우포식당

우포식당의 문을 열면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소주와 막걸리, 그리고 담배 냄새가 섞여 일주일 쯤 발효한 냄새, 술집을 겸하는 식당에서는 으례 나는 냄새지만 우포식당에는 이상하게 그 냄새가 심하다. 하지만 원탁 스텐레스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의자아 앉아 5분만 지나면 그 냄새에 익숙해진다. 만원 짜리 오뎅탕과 소주 한 병. 언제나 외로운 40대 기타학원 원장님 A 는 급히 나와 20대 기타 선생 B에게 소주를 따른다. B는 라식 수술을 한 뒤에 시력이 1.5 가 되었단다. 너무 부럽다. 썬글래스도 그냥 껴도 되고 물속에서도 물고기가 잘 보이겠구나. 목욕탕에 들어갈 때 안경을 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 A는 한때 유도 선수 아내는 전직 격투기 선수. 둘이 부부싸움을 하면 와일드 하겠구나, 라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이긴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전직 유도 선수이자 한 주먹 했다는 그는 이제는 몸이 성치 않은 배나온 중년. 자신이 쓴 시가 대학교 주최 백일장에 걸려 글을 쓰라고 문학 교수에게 글을 쓰라고 권유 받았다는 이야기, 교도소에 갔을 때, 그 재능으로 항고장과 연애편지를 대필했다는(그 편지 때문에 형을 사는 기간동안 애인이 남자를 떠나지 않았다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편지지 스무장 노트를 스무권 씩 줄줄 막힘없이 쓸 수 있고, 대신 써준 항고장 때문에 형량이 반으로 줄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야기 사이에는 원샷 소주. 나는 반잔, B는 마시지 않는다.(라식 수술을 했으니까)

우포식당에서는 구라를 좀 쳐도 괜찮다. 세명의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도, 피부가 검고 주름이 자글 자글한 아저씨들의 테이블에도 구라가 덧붙여진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을 테니까. 단, 우포식당 안에 있을 때에만 구라는 신빙성을 얻는다. 바깥으로 나가면 모두 무효. 우포식당의 대표 안주 명태찜이 등장. 명태 보다 양념이 더 맛있다. 양념을 밥과 함께 먹어도, 국수사리에 비벼먹어도 좋다.

나는 왼손을 펼쳐 본다. 내 왼손은 왜 B처럼 크로마틱 스케일로 기타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내 손은 길고 예쁜데. 굳은살도 애처롭게 박혀 있는데. B가 말하는 문어발 워킹처럼 기타 줄을 누비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절름발이. 지이이잉, 하고 문자가 왔다. ‘전화 바람.’ 소설을 쓰는 노총각 선배. 심심할 때면 전화를 해서 삼십분이고 한 시간이고 전화를 끊지 않는 사람이다.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그는 외로운 사람. 알고 보면 A도 B도 외로운 사람. 울퉁불퉁한 방음 스펀지로 에워싸인 지하 연습실에서 A는 하루종일 온라인 게임을 B는 일주일에 두 번 기타레슨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기타레슨을 받는다. B는 다른 학원에서도 레슨을 한다. 그러나 레슨을 받는 시간 보다 술을 같이 마시는 시간이 더 많다. 외냐하면 사십대 중반이 된 A는 외롭기 때문에. 대구가 고향이라 부산에는 친구가 없기 때문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정작 필요로 할 때 등을 돌리기 때문에….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그는 나를 부를 때 언제나 성 뒤에 작가라고 부른다. 자기를 원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지만.) 내가 가끔씩 자기에게 반말을 쓰는게 재밌단다. 나도 가끔씩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는게 재밌다. 다른 사람들(주로 색스폰을 불면서 중년의 쓸쓸함을 달래려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먹으면 다들 나를 찾는다고 부추켜 세워준다. 아저씨들 기다려, 소설을 마치면 반말로 구라를 까줄게. 비싼 돈 주고 왜 그런 걸 불고 있어?

우포식당의 문이 드르럭 열린다. 우리 아버지보다 더 쪼글 쪼글한 주름을 지닌 사나이가 등장한다. 주인이자 일하는 아주머니는 별 말 없이 그를 맞이한다. 그는 제일 구석자리에 혼자 자리를 잡는다. 나는 분명 그를 지난 번에 이곳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에도 혼자 앉아 술을 마시다 주인 아주머니와 동석을 했다.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머니는 버너에 전골 냄비를 올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숫가락질, 젓가락질을 견뎌낸 검고, 두꺼운 냄비. 그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채와 고기, 당면이 들어가고 지글 지글 끓는다. 곧이어 휴대용 버너가 둥그런 양철 테이블에 놓여지고 냄비가 올려진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말 없이 소주 한잔씩을 입에 털어넣는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신빙성 없는 구라가 계속 이어지는데도,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말 이 또 한잔. 나는 문득 아저씨가 우포식당의 주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은 아니겠지. 애인인가? 쭈글쭈글한 아저씨도 애인이 될 자격은 있다.

‘에이, 술도 안 먹고 재미없다.’
A의 파장 멘트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격은 2만원. A가 계산을 하고, 나는 기타를 매고 밖으로 나온다. 바람이 차다. B는 지하 연습실에서 새로운 밴드결성을 대비해 연습을 하기위해 내려간단다. A와 나는 각자 집으로 향한다. A는 자주 놀러오라는 말을 한다. 나는 네, 라고 말하지만 자주 갈지는 잘 모르겠다. 바람은 조금씩 추워지고 몸에서는 아직도 시큼한 우포식당의 냄새가 남아 있다. 전화를 달라고 하던 선배에게 전화를 하니 아직도 통화중. 한시간째 통화중. 나 아닌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