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비치의 서핑걸

선셋 비치에서 해변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파도가 잦아지는 쪽의 모래사장에 앉아 밀려오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녀에게 시선이 멈춘 건 팔을 파도 쪽으로 쭉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파도에게 인사를 하는 건지, 밀려가는 파도에게 인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누군가에게 손을 흔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서핑대회를 중계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해변 한가운데에  스폰서 광고가 붙은 천막이 중계 본부일 것이다. 매년 겨울 전 세계의 서퍼들이 거대한 파도를 타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온다.

서핑을 직접 눈으로 보면 관광 채널에서 나오는 화면처럼 아슬아슬하거나 멋지지 않다.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보지 않는다면 저 멀리서 검은 점처럼 생긴 사람들이 한참을 헤엄쳐 가다가 짧게는 수 초, 간 길게는 몇 분 동안 파도 위를 지나갈 뿐이다. 서퍼가 넘어질 때 보드가 물 위로 살짝 솟아오른다. 그걸로 끝이다. 발목과 보드는 끈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솟아오르겠지만 거대한 파도에 쓰러진 서퍼들은 어디론가 휩쓸려 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단 한 번의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기 앉아 있기엔 파도가 세지 않나요?”
여자는 빤히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누가봐도 관광객처럼 하와이언 셔츠에 썬글래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쑥쓰러워졌다. 생전 처음으로 투어 가이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런 차림을 했다고 변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일 이곳에 나오는 걸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한손은 햇빛을 가리며 눈을 찡그렸다.
“매일 서퍼들을 보시겠네요. 어때요? 잘 보여요?”
“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아침부터 해가 뜰 때까지 서핑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망원경이 없지만 잘 보여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만 보거든요. 해변에서 출발해서 파도를 몇 번 타고 돌아올 때까지 주욱…..”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왜 서핑을 하는 걸까요?”
이 여자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어차피 일행들은 백사장으로 한참을 걸어갔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서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겠죠.”
여자가 말한다.
“그건 그래요. 서핑을 하나요?”
“그리 잘 하진 못해요. 나는 이렇게 보는 쪽이 더 좋아요. 한참을 보고만 있노라면 문득 미치도록 서핑을 하고 싶을 때가 생기죠. 목숨이 걸릴 만큼 위험한 일인데도… 그럴 때엔 보드를 들고 나가요. 당신은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디 보드는 타요.”
여자는 풋, 하고 웃었다.
“이런 곳에서 바디보드를 타다간 목이 부러질지도 몰라요.”
“소울 서퍼라는 영화를 보니 여자 주인공이 상어에게 한쪽 팔을 물려버리기도 하던데요.”
“배써니 해밀턴(1990-, 왼쪽 팔을 잃고도 서핑 선수권 대회에참여 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로 책을 썼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야기 말이군요. 나도 봤어요. 보는 게 부끄러워질 만큼 긍정적인 영화였지만…”

여자는 대회 본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대회 중에는 항상 앰뷸런스가 대기 중이에요.”
“와이키키의 파도는 훨씬 잔잔한데…. 그거 알아요? 듀크(1890-1968, 하와이 출신의 현대 서핑의 선구자로 올림픽 수영 5관왕을 차지 했다)는 와이키키에서 1마일을 파도를 타고 내려왔데요.”
“와이키키에 머물고 있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노스 쇼어가 좋아요. 이삼년에 꼭 한 번은 이곳에서 지내요. 캘리포니아에서도 파도를 탈 수 있지만… 물이 너무 차거든요. 그거 알아요?”
“네?”
“카이울라니(1875-1899, 하와이 왕조를 통털어 가장 사랑받는 공주) 공주도 파도를 잘 탔데요.”
듀크도, 카이울라니도 와이키키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들의 목엔 항상 레이가 걸려 있는데,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또 알려줄 건 없나요? 글이라도 써야 겠어요.”
“기자?”
“아뇨, 그냥 소설가.”
이방인들은 소설가에게 친절하다. 하지만 영어로 출판된 책이 없는 소설가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캘리포니아의 첫 라이프가드가 누군지 알아요?”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잭 런던(1876-1916, 미국의 탐험 소설가)이 하와이에 있을 때 서핑을 가르쳤던 사람이래요.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헌팅턴 비치에 정착을 해서 처음으로 라이프 가드가 되었죠. 서핑보드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어요.”

하와이의 모든 라이프 가드는 인명 구조용 서핑 보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오아후 섬 서쪽 바카하 비치에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 한 적이 있다. 물이 그리 깊지 않았는데도 조류 때문에 해변으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이 도넛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변과의 거리는 10미터도 안될 것 같은데, 심리적인 거리는 100미터가 넘었다. 3달러 짜리 튜브를 버리고 열심히 수영을 했지만 다리 한쪽은 쥐까지 났다.

“Help!”
나도 모르게 그 소리가 튀어 나왔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다. 배를 뒤집고 잠깐 쉬다가 수영해서 나오면 되는데 공포에 질려 계속 팔 다리만 저을 뿐이었다. 힘은 점점 빠져나가는데….
그 때에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서핑 보드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나를 향해 다가오던 라이프 가드였다. 내가 죽을 뻔한 모습이 그에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위급한 상황일 수록 침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무릎을 보드에 꿇고 두 팔을 한꺼번에 천천히 저으면서 다가오는 천사. 다리에 쥐가 나서,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보고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그가 나를 잡고 해변으로 눕힌 뒤에 처음 했던 말이 생각난다.
“What’s your name?”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극도의 공포 때문에 영어를 잊어버렸을 지도 혹은 내 이름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하려다 일행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자리를 떠야 했다.
“이야기 고마워요.”
“뭘요.”
여자는 바다 쪽으로 손을 흔들었던 것처럼 내게도 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선홍색 헤어밴드로 질끈 묶었다. 나는 힐끗 힐끗 뒤를 돌아보면서 일행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푹, 하고 깊게 모랫속으로 빠지는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

일주일 동안 마우이 섬 여행을 다녀왔다. 험한 협곡 아래에서도 서퍼들이 보였다. 라이프 가드도 없이 서넛의 서퍼들만 서로를 의지하며 파도를 타고 있었다. 마우이 섬은 오아후 섬보다 약간 큰데 사람은 십분의 일 정도만 산다. ABC 스토어도 없고,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없다. 나무와 해변, 파도가 있는 곳에 우리는 단지 손님들일 뿐이다. 절대로 주인이 아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몰아치고, 확산이 폭발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람이 없는 곳일 수록, 위험한 곳일 수록 파도 타기는 짜릿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안한 수준의 공포가 있어야 스릴이 있는 법이니까. 보름달이 뜰 때 달빛을 조명삼아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헬기를 타고 거대한 파도가 생기는 곳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서핑은 하와이가 전세계에 전파한 최고의 선물이다. 원주민들이 나무를 깎아만든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누볐다면, 이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합성수지로 매끈하게 만들어진 서핑 보드를 타고 다닌다. 196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폭발했던 서핑의 붐은 음악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다소 수그러 들었지만 아직도 하와이의 노스 쇼어는, 7미터가 넘는 파도로 전 세계 서퍼들을 유혹하고 있다.

오아후 섬에 돌아와 다시 노스 쇼어에 들렸다. 샤크 코브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가 파도가 너무 세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핑 선수권 대회는 막을 내려서 지난 번 처럼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다. 바람이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세게 불었고, 바닷가 근처에는 바다습기로 인한 안개까지 끼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있던 자리로 걸어가 보았지만 모래사장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위험하다는 구조요원의 안내방송이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바다와 구름과 파도를 지켜보았다. 파도소리가 어찌나 센지 주기적으로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저기 수평선 부근에 점 하나가 보이는 듯했다. 서핑보드 위로 간간히 내미는 그 점은 보드 위에 일어설 듯 넘어질듯 하다 다시 일어섰다.

이럴 수가…
그 여자였다. 지난 주에 이 자리에서 캘리포니아 최초의 라이프 가드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여자. 멀리서도 그녀의 빨간 헤어밴드가 흑색 바다와 대비되어 빨간 점처럼 보였다. 날씨가 험해서 해변에 나와있는 사람들도,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그녀는 위태위태하게 보드에서 일어나 파도의 진행을 따라 재빠른 속도로 미끄러졌다. 나는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나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바람과 거세어져서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마치 초대형 진공청소기를 수백대씩 돌리고 있는 것 처럼 시끄러워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다.

파도를 한동안 잘 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의 보드가 하늘위로 솟구쳤다. 어디에서 그녀가 다시 솟아오르는지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거친 파도 때문에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라이프 가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