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커피 하우스

커피는 몸에 나쁘다. 특히 나 처럼 위가 나쁜 사람이 아침마다 진한 원두커피를 서너잔씩 마시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공복에 마시는 커피는 정신을 맑게 해주기 때문에 몇 자라도 더 적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안 그래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을 쓰고 있을 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이번 소설은 2년이나 질질 끌고 있다. 좀비가 나오는 고등학교 이야기인데, SF와 로맨스 까지 섞여 있다. 구성이 대여섯번 바뀌고 분량도 늘었다가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그날도 열심히 글을 고치던 중 흉통이 느껴졌다. 위가 아픈 게 아니라 가슴이 아픈 것이었다. 방을 데굴 데굴 구르다 병원에 갔다. 가슴이 아픈게 아니라 위가 아픈거란다. 커피, 술, 밀가루 음식, 기름진 것 금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왜 죄다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일까?
다른 것은 먹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커피는 곤란한 것 같았다.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남은 원두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커피 머신을 포장해서 다락에 올려두었다. 일회용 커피도 버렸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첫날부터 눈거풀이 무거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보통은 오전 여덟시 부터 글을 쓰는데 열시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한 자도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땐 신선한 공기가 제격이지.
나는 늙은 치와와, 보동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원룸과 주택이 골고루 섞인 우리 동네는 오전 10시가 되면 한산하기 그지 없다. 다들 출근을 하거나 등교를 해 버린 후다. 동네 할머니들이 마실을 나오기는 아직 이른 식간이다. 나 같은 소설가 만이 헝클어진 머리와 풀린 눈으로 골목을 누빈다.
그 때,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 나왔다. 동시에 위가 쪼르르륵 움츠려 들었다. 커피 향기였다. 설겆이를 끝내놓고 한 잔 하는 아주머니일까? 나도 모르게 향기에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골목 모퉁이의 개인 주택 주차장 공간에서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 짜장면집은 두개, 세탁소가 한 개, 목욕탕이 하나, 반찬 가게 두개, 슈퍼가 두개 있어도…. 커피숍은 없었다. 큰 길 건너 바닷가로 가면 한 블록 마다 커피숍이 있지만 우리동네에 걸어다니는 사람이라고는 노인들 뿐이다.
뭐, 요즘은 틈새공략을 노리니까.
주택 주차장을 개조해서 천정도 낮고 공간도 협소했다. 문은 깔끔하게 유리샷시로 만들어져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원목으로 된 커피 바가 있고 그 안에는 바리스타 한 분 서 있었다. 내가 잘못본 것일까? 머리가 희끗희끗 하신 할아버지다. 좋게 봐도 예순은 넘은 것 같다.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가게를 쓸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오픈 후, 첫 손님이네요. 기념으로 무료로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나는 천칭자리에 A 형이다.
좋게 말하면 조화와 균형잡힌 생활을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삶의 중심이 없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내린 결정도 번복하기 마련이다. 귀가 얇다. 그래서 소설도 이랬다 저랬다 중심을 잡지 못한다.

물을 전기 쿡탑에서 끓이고, 커피콩을 갈고, 핸드 드립으로 천천히 커피를 추출했다. 원두에 거품이 부글부글 거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드립을 하는 방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던데, 나는 귀찮아서 커피머신에 물을 붓고 자동으로 커피가 추출되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주인장은 아무 말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커피를 내렸다.

내 앞에는 하얀 머그컵에 담긴 커피가 놓여 있다. 김이 모락 모락 솟아오른다. 위염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보름 째, 하지만 콧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정신없이 만드는 이 커피 향기를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게다가 주인장이 뚤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오픈 기념 첫 커피를 마시는 손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게를 둘러본다. 메뉴도 붙어있지 않다. 그 흔한 에스프레스 머신도 없다. 요즘에 유행하는 커피 볶는 기계도 없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주차할 수 있는 자리에 바와 스툴 대여섯개가 전부였다. 주방 벽에는 커피 콩이 담긴 유리병이 일렬로 주욱 놓여 있었다. 그 중 몇개는 짙은 초록색의 잎사귀가 담겨있다. 보동이는 주인장이 준 물을 햝아먹고 있다.
침을 꿀꺽 삼킨다.
커피잔을 집어들고 살짝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처음엔 진하고 쓴맛이 났지만 입안에 단맛이 남았다. 또 다시 홀짝 홀짝.
“호…혹시 설탕 넣으셨어요?”
주인장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언제나 블랙으로 마신다.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 이렇게 커피가 달콤할 수 있을까? 설탕이나 초콜렛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달콤함이다.
“그런데… 메뉴판은 아직 만들지 않으셨나봐요?”
어떤 커피를 얼마에 파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하하.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라 천천히 할 예정입니다.”
“혹시, 이 집에 사세요?”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나도 손님이 얼마 오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게를 하고 싶다. 독자가 얼마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하려면 통장 잔고가 넉넉해야 하겠지. 미션 임파서블.
순식간에 커피를 다 마셨다. 속이 쓰리지 않았다. 약간의 열기가 있긴 해도 불편함은 없었다. 미리가 천천히 맑아졌다. 스피커가 지직 거리며 비지스, 혹은 이와 비슷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좋은 커피와, 정겨운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지요.”
주인장은 남은 커피를 따라주었다. 보동이는 햇볕이 비추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비지스는 카펜터즈로 바뀌었다.
앞으로 자주 들르겠다는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보동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뒤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았던 단락이 술술 풀렸다. 주인장 말대로 오늘은 실패하는 법이 없어야 한다.

열심히 글을 쓰고 난 다음날, 멋있다고 여겼던 글이 지저분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날 쓴 글은 단정하고 복잡하지도 않았으며 몇 가지 좋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갈등은 해결되고 다른 문제를 도출했다. 등대는 저 멀리서 망망대해를 비추며 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다. 이런 식으로 또 쓰면 된다. 좀비를 백 마리 죽이든,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소녀가 미래에서 나를 구하러 오든, 어떻게든 풀어주마.
자, 쓰자.
그런데….
글을 쓰려고 하는데…. 한 줄쯤 쓰다 막힌다. 지우고 다시 써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멍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커피 하우스로 달려갔다. 딱, 한잔만 마시고 돌아오면 모든게 해결될 것 같았다. 서너 블록 너머에 2층집이 보인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철제계단이 있는 그 집의 주차장에 커피 하우스가 있다.
그랬나? 점점 그곳에 다가갈 수록, 나는 그곳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동이를 데려오는 건데. 보동이가 도움이 안되려나? 이 골목을 돌아 빌라 옆을 지나가면 바로 그 집인데, 커피 향기가 지금쯤 나야 하는데,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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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죄송합니다.”
셔터가 안쪽에서 스르르 열리더니 영감이 나타났다.
“오늘은 좀 늦게 열려고 했는데, 손님이 주차장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쥐가 나서 벽을 잡고 있어야 했다.
“함께 다니는 강아지는 안보이네요?”
나는 대답도 없이 가게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가 바에 턱, 하고 앉았다. 여전히 메뉴판이 없다.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커피 한 잔 주세요. 어제 마신 것도 좋아요.”
할아버지는 바로 들어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어쩌나….어제 무슨 커피를 줬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이런. 스물 네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게 기억이 안나다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살짝 뛰기라도 했으면 머리가 천정에 부딪칠 뻔 했다.
“비슷한거라도 좋아요.”
그걸 마시면 어제처럼 휘리릭 소설을 쓸 수도 있을 테니까요.
영감은 골똘이 생각(하는 척)하더니, 진열장 맨 왼쪽에서 두 번째 병을 꺼내 들었다.
“안색을 보니 속도 좋지 않으신것 같은데…. 이번엔 차를 한 잔 마셔보면 어떨까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쿡탑에 물을 올렸다. 이집엔 커피 머신도, 전기 포트도 없다. 물이 끓자 5분 정도를 기다렸다.
“물이 좀 식어야 합니다.:
음악이라도 틀어줬으면 좋으련만 영감은 주전자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선이 물을 식혀주기라도 하듯이. 거름망이 달린 큰 컵에 찻잎을 넣고 물을 천천히 부었다. 쌉쌀하고 달큼한 향기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 차의 이름은 뭐죠?”
이번엔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후훗. 왼쪽에서 두 번째, 라고 기억하지요. 5분 뒤에 마시세요.”
영감은 주차장 한 귀퉁이로 가서 음악을 틀었다. 뉴에이지 명상 음악이 흘러나왔다. 축축 늘어지는 신디사이저에 에코가 잔뜩 걸린 피아노가 구름을 둥둥 떠다니는 멜로디를 연주했다. 한 곡이 끝나고 나는 차를 천천히 마셨다. 속이 편해졌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데, 이 차는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난로도 켜지 않았는데 몸이 더워지고 등에서 땀이 났다. 그리고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어제와는 다르게 몸의 중심이 아래로 향하면서, 몸 위에 있는 것들이 죄다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7천 5백원입니다.”
“네?”
“찻값 말입니다.”
영감이 웃는다. 생각보다 비싸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이런, 지갑을 놔두고 왔다.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작업실에서 냅다 달려온 것이다.
“저…저기, 달아두면 안될까요?”
영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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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혹시 맡겨둘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지갑을 통째로 놔두고 왔다.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다. 목걸이나 반지가 있으면 맡기겠는데 그런 것도 없다. 휴대폰도 놔두고 왔다.
“저기, 전화를 좀 쓸 수 있을까요?”
영감은 휴대폰을 건넸다. 최신형 아이폰이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는 자고 있을 게 분명하다. 역시 1분 동안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째째한 영감 같으니. 그까짓 찻값을 누가 떼어 먹는다고.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일을 조금 도와주십시오.”
“네?”
“시급을 5천원으로 잡으면 찻값이 7천 5백원이니까 한 시간 반을 일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남는 건 시간이니까, 돈도 아끼고 일석 이조다. 이렇게 조그마한 커피하우스에 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빗자루로 청소를 하는게 다겠지.
“좋습니다.”
모든 일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나야 그런 뻔한 말 따위는 믿지 않느다. 성격 상 모든 일은 계획을 해야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굴러오는 행운을 발로 차 버린 경우도 있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 아이가 고백을 해 오는 경우 같은 거 말이다.(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5년 전쯤에 일어난 일이지만.) 아무튼 ‘좋습니다’라고 말해버린 순간, 그 뒤로 어떤 일이 줄줄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했다. 내가 그 날 지갑을 가져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커피 하우스를 찾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씩 생각을 해 본다. 고백을 했던 여자아이와 사귀었다면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을까, 따위의 생각처럼 덧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아주 다른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좀 더 외롭고, 쓸쓸하고, 암울한.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내 글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을 원망하는,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가는 글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뭐부터 할까요?”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르고 영감에게 묻는다.
“글세…. 일단 메뉴판부터 만들어야겠지?”
영감은 고용인이 된 순간부터 말투가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나도 동화되어 버려서 피고용인의 공손한 자세로 변했다. 이게 다 칠천 오백원 때문이다.
“아니지… 먼저 가게 이름을 지어야 해.”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게를 열었단 말인가?
“당신, 소설가라며? 이런 거는 척척 머리에 떠올라야 하는 거 아냐?”
점점 말이 험악해진다. 나는 열심히 생각하는 척을 한다. 1분을 견디면 80원 정도를 벌 수 있다. 300원 정도를 번 뒤에 내가 말했다.
“주차장 커피 하우는 어때요?”
영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100원을 번 뒤에 영감이 말했다.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아.”
이렇게 나와 주차장 커피하우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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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커피 타는 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집에서는 원두를 갈아서 자동 커피 머신에 넣고 기다리면 되는데, 핸드 드립은 까다로운 방식이 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후배녀석이 시범을 보이면서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 따라 커피의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 적이 있다. 말은 안했지만 나 같이 대충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마실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곧,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커피를 내릴 때 다른 건 몰라도, 뜨거운 물을 부어 거품이 나올 만큼 2,3분 기다렸다가 여과지에 물이 묻지 않도록 천천히 물을 부어 걸러내야 한다는 건 기억이 났다. 그 이외의 기술은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영감이 묻는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하려면 커피를 내리는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잖아요.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아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척을 하는 것 같다.
“뭐 커피 내리는 방법이 그렇게 특별한 게 있을 게 없잖아?”
실망이다. 영감이 커피계에 평생을 몸담고 일하다가 고향에 내려와서 심심풀이로 자신의 집 주차장에 커피 하우스를 차린 줄 알았다. 커피에 뜨거운 물을 내릴 때 손목의 각도라든가 속도를 조절하는 법, 향기로 원산지를 구별하는 법 같은 것을 말해주면서 커피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다는 둥, 천 번을 드립 해야 제대로 된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니지… 어쩌면 영감을 나를 테스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림사에 갔다고 바로 무술 비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으니까.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몇 번이고 실수를 하기를 바랄 지도 모른다.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하루 세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돈은 받지 않기로 했다. 내가 바라는 건 그 집 커피였으니까. 세 시간 일하면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시급을 오천원 정도로 하고 커피가 칠천원이니까, 반 값보다 더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 요일날 일하기로 했다. 그러면 열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루에 두 잔 꼴이니까 나쁘지 않다. 오후엔 볕도 잘 들고, 내가 아는 한은 손님이 거의 없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집에서 자료 조사를 한답시고 웹서핑을 하는 것 보다 나을 것이다. 아내에게 말하니 ‘나쁘지 않네. 당신이 일을 한다니.’ 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밤 늦도록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와서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소설을 쓰는 것도 일인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출 퇴근 시간이 있고 월급을 받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 중학교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으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사실을 모른다.
“수고해.”
영감은 귀찮다는 듯이 커피 하우스 안쪽의 문을 통해 마당으로 빠져나갔다. 널따란 마당엔 아기자기한 화분 수십개가 있고 2층으로 가는 계단에 화장실이 있다. 다행히 수세식이다.
나는 휴대폰을 연결해 음악을 바꾸었다. 필립 케이 딕의 책을 읽으려다 어쩐지 분위기에 맞지 않아서 요시토모 바나나의 책을 꺼냈다. 죄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다. 철 지난 펄프의 노래를 틀어넣고 요시토모 바나나의 몸으로 그대로 흡수되는 문장에 빠져 있을 때 드르럭, 하고 문이 열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첫 손님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