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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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가 ‘미도리’를 본 건 채팅방 대기실에서였다. 그는 ‘노르웨이의 숲 , 쪽지 바람’이라는 비밀방을 만들어놓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중이었다. 세 시간 동안 포탈사이트에 뜬 주요 뉴스를 읽었고,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세 개 넣었으며, 담배는 다섯 개피를 피웠다.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라고 쪽지를 보내는 여자가 한 두 명은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아무도 그에게 쪽지를 보내지 않았다.
채팅창을 닫기 직전 대기실에서 ‘미도리’라는 아이디를 발견했다. 초대 버튼을 클릭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미도리입니다. 방가 방가! *.*’
인사치례가 끝나고 자기 소개가 시작되었다. 와타나베는 임용공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미도리는 부산에서 상경해 직장을 다닌 지 반년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에 가볼 곳에 많다는데 주말에도 이렇게 방 안에 처박혀 있어요.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집에 있는데, 막상 집에 있으려니 심심하네요.’
‘그럼 밖으로 나오세요. 제가 괜찮은 곳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와타나베는 되도록이면 돈이 들지 않고,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 ‘서울숲’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약속을 정하고 집을 나섰다. 반 지하 자취방에서 나오자 눈이 부셨다.
서울숲은 생각 보다 훨씬 크고 잘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길과 정원에는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보였다. 미도리는 약속시간보다 이십 분 늦게 나왔다. 약간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에 민망할 정도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둘은 서울숲을 천천히 걸었다. 와타나베가 앞장을 서고 미도리가 한 걸음 뒤를 따랐다. 메타 세쿼야 숲을 거닐면서 미도리가 자연스럽게 와타나베의 손을 잡았다. 손과 손 사이에 온기와 땀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북쪽에 다다르자 거대한 기중기가 소음을 내며 피스톤 운동을 하고 있었다. 서울숲을 자신들의 아파트 정원처럼 활용하겠다는 광고를 내세운 고품격 아파트의 공사였다.
“그런데… 왜 내 초대에 응한 거지? 채팅으로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거든.”
물론 그건 거짓말. 와타나베는 또 다른 미도리, 나오코, 심지어는 레이코 여사를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은 3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도넛처럼 마음이 비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와타나베의 레종데르트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헤어질 때는 용돈을 쥐어주었다.
“후훗, 오빠가 만든 대화방 이름이 제가 만들던 것과 똑같아서요. ‘노르웨이의 숲, 쪽지 바람.’ 만들기만 하면 남자들에게 쪽지가 밀려 들어와요. 대낮에 서울숲으로 가자고 한건 오빠가 처음이에요. 나, 사실은 서울숲이란 곳이 무슨 음침한 모텔이름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지?”
미도리는 약간 머뭇거렸다.
“저기….. 와타나베씨는 특별히 한 시간에 삼 만원에 해드릴게요. 지금까지 산책한 시간은 빼고. 나도 즐거웠으니까.”
와타나베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한 번에 보통 십 만원을 받아. 숙박비는 포함되지 않지.”
둘은 말이 없어져 버렸다. 해는 이미 져버렸고 공사장에서 나는 소음은 점점 커졌다. 둘은 붙잡은 손을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슬며시 떼어냈다. 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땀은 차갑게 식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