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삭제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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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CCTV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시디가 하나 둘 씩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남자 혼자 사는 원룸에 훔쳐갈게 뭐가 있겠냐만 유독 좋아하는 시디가 사라지고 있었다. 스팅, 익스트림, 라디오 헤드와 오아시스까지…

오아시스의 데뷔앨범 Definitely Maybe 가 사라졌을 때엔, 어딘가 처박혀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Morning Glory 와 Be Here Now 까지 없어지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출근하기 전에 시디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면 하나씩 없어지는 통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요즘에 누가 시디를 듣는다고 훔쳐간담? 서랍에 넣고 잠가 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서랍을 잠갔는데도 시디가 사라지면 나는 미쳐버릴 게 틀림없으니까. 미선과 헤어진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머리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누군가가 훔쳐가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CCTV다.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했다. 카메라를 설치하면 인터넷이 되는 어디서든지 내 방을 감시할 수 있고 컴퓨터에 동영상으로 저장도 할 수 있다. 감시용 카메라는 밤늦게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적외선 기능이 있는 것 까지 구입했다. 자,자, 이제 들어와서 맘껏 훔쳐 보시라고.

김과장은 ‘어이, 그거 야한 동영상 아냐?’ 며 은근히 접근 했다. 나를 자기 수준으로 보다니. 저는 도둑을 잡으려는 겁니다. 집에 돌아와 녹화된 동영상을 봐도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 해가 뜨고,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혹시 시디를 어느 곳에 쳐 박아 놓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숨이 나올 정도였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시디를 들을 때가 많았으니까. 오디오로 시디를 들으면 이어폰으로 MP3를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훨씬 리얼하다고나 할까? 반짝거리는 음반과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면 그 속에 들어있는 음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8일째 CCTV에서 범인이 나타났다. 녹화된 화면을 보다가 오후 두 시경에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빙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여자다. 가슴도 나와 있고 히프 윤곽도 분명 보인다. 여자는 시디를 뒤적거리다 책장을 살펴본다. 오래된 영화잡지를 뒤적거리고 몇 권 없는 소설책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는 책 한권을 집어 들고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원룸에 열쇠는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도어락이다. 보조 열쇠로도 잠글 수 있고 비밀번호도 바꿀 수 있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그 사람은 분명 네 자리 비밀 번호도 알고 있다. 책장을 뒤졌다. 어떤 책이 없어졌는지 그 사람의 손가락이 멈춘 곳을 살폈다. 파란색 하드커버였는데….. 이런, 일기장이 없어졌다. 아주 가끔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곳이다.

뒷통수가 찡하게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아파온다. 잃어버린 물건들의 공통점이 있다. 왜 그걸 몰랐을까? 그것들은 모두 미선이 내게 선물해준 것이다. 일기장은 사귄지 100일 째 되는 날 받았다. 그럼 CCTV에 잡힌 사람이 미선이란 말인가? 설마. 미선은 머리가 허리만큼 내려왔었는데… 이제는 짧게 잘랐을 지도 모른다. 화면을 확대해서 보고, 천천히 해서 봤다. 어떻게 보면 미선이 인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아닌 것도 같다. 미선과 헤어진지 딱 일 년이 흘렀다.

나는 방을 휘리릭 한 번 둘러본다. 혹시 그녀가 내게 선물해준  것들이 남아 있을까? 시디 몇 장과 책이 아직도 존재한다. 자기 집에는 시디 플레이어가 없다면서 대학교 때 즐겨듣던 시디를 가져왔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미선은 시인이 되고 싶어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두 해 연거푸 떨어졌는데 올해는 붙었을까?

도둑은 점점 대담해졌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우리 집으로 들어와 보란 듯 물건을 가져갔다. 한 번 올 때 마다 딱 한 개씩 말이다. 책상을 뒤져서 사진첩 안의 사진을 모조리 가져갔다. 물론 미선과 함께 찍은 사진들만 골라서. 블러의 앨범 ‘Great Escape’, 장정일의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 디비디… 잠깐, 디비디는 선물 받은 것도 아닌데 같이 봤다는 이유만으로 가져가다니 너무 하잖아. 나는 도둑이 미선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멍하니 CCTV를 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미선이 나타는 부분만 무한 반복.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오늘은 미선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다. 미선은 카메라를 보고 살짝 웃는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바이 바이, 바이 바이. 이제 우리의 추억이 남긴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가져가라, 다 가져가. 나도 손을 흔든다. 바이 바이, 바이 바이.
나는 경비실에 전화해서 비밀번호를 바꾸는 법을 물어본다. 예전번호는 미선의 생일 네 자리였다. CCTV 카메라를 제거한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감시 동영상도 지운다.

‘정말로 삭제하시겠습니까?’
나는 삼 초간 머뭇거리다가 ‘네’ 버튼을 클릭한다. 머릿속에서 마치 미선의 기억이 깨끗이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는 새롭게 시작할 수만 있을 것 같다. 동영상 파일을 지우면서 눈물이 났던 적은 없었다. 하드디스크가 덜덜덜 떨리면서 지우는데 한참이 걸렸다. 컴퓨터도 새로 바꾸어야 하겠다.

● 본 단편은 박기영의 뮤직비디오 ‘녹화된 테입을 감듯이’의 스토리 라인으로 이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