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픽션 워크샵을 기웃거리는 때는, 쓸 것이 없어져 조바심이 나 있을 때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새하얀 모니터 위의 깜빡거리는 커저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으면 암담해 질때가 있다. 마치 이게 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깨끗하고 텅 빈 하얀 백지 공간.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마술같이 쓰여지기를 바라는 키보드, 깜빡거리는 커저. 무엇이든 성공할 준비되어 있는 인생이지만, 죽도록 매달려 해야 할 것이 없다.
내게 에이전트를 잡을 기회를 주던지, 천부적인 재능을 달라. 나는 테이블을 박차고 아직도 컴컴한 밖으로 나선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다. 시끄러운 알람 때문에 겨우 일어나 대충 샤워를 하고 일터로 나간다. 그들은 자신의 하루가 피곤하더라도 일정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베스트셀러를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은 베스트셀러를 사 읽는 사람들이다. 소비자, 나도 때로는 소비자가 되고 싶다. 일주일 내도록 회사에서 업무에 매달린 뒤 주말이 되면 서점으로 달려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 고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학성, 재미등을 다 제쳐두고 맘에 드는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만으로 덜컹 책을 사고 싶다. 사거리 모퉁이의 무료 신문 가판대에서 빌리지 보이스를 꺼내들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무료 픽션 워크샵, 반즈 & 노블 서점, 83번가. 금요일 오후 7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깨알 같은 한 줄을 빨간 펜으로 주욱 긋는다. 내게 기발한 소재를 달라. “문제는 캐릭터입니다. 소설 속에 독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캐릭터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반쯤은 성공한 겁니다.” 내게 기발한 소재를 달라. 아직까지는 소득이 없지만 중요한 건 이 다음 부터다. “자 그럼 지금부터 10분에서 15분 정도 시간을 드릴게요.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심만의 캐릭터를 묘사해보세요.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요. 한 두 문단 정도로 간단하게 써보는 거예요.” 오, 작가세요? 그런데 이시 간에 글 한줄 더 쓰지 시시한 바에 한 시간이고 맥주병을 잡고 있으세요? 존 스타인 벡도, 스티븐 킹도, 제프리 유진도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다. 자자, 여러분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도움을 좀 주세요. 아이디어를 살짝 훔쳐가겠습니다. 제가 요즘 쓸게 없거든요? 356페이지짜리 소설을 3개월 이내에 마쳐야 하는데 아직 한 페이지도 안 썼거든요? “이제 한번 누가 읽어볼까요?” “네, 당신이요. 초록 체크무늬 티셔츠를 입은 젠틀맨. 한 번 읽어보실래요?” 내게 소재를 달라. 나는 호주머니에서 총을 꺼낸다. 다들 내가 가슴 속에서 손수건이라도 꺼낸 듯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지러지게 고함을 지르기까지는 몇 초가 걸리는 것일까. 나는 먼저 자신이 글쓰기의 신이라도 되는 양 잘난 척 해대던 강사를 향해 한 방 쏜다. 총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소음기를 권하던 역겨운 중국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서점의 유리창이 덜커덩거릴 정도다. 정확하게 정수리에 맞아서 머리 뒤로 분수처럼 피가 넘쳐 흐른다. 그제서야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들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리저리 피하지만 나는 정확히 내가 쏘아 죽일 사람을 알고 있다. 존 스타인벡, 스티븐 킹, 제프리 유진. 스티븐 킹은 내 멱살에 잡혀서 오줌까지 흘렸다. 이런 이런, 이러시면 안되요. 끝까지 명성을 지키셔야죠. 이정도 쯤은 당신이 쓴 호러 소설 중에서도 별 것 아닌거 아닌가요? “자, 이제 한번 누가 읽어볼까요?” 내게 좀더 기발한 소재를 달라.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발표를 해 보지만 기억날만한 멋진 캐릭터는 없다. 오늘은 소득이 없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 집에 가서 메모한 것을 곰곰이 살펴본다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한 시간 삼십분이 다 지나자 강사는 실제로 수업에 참가하면 50불을 깎아 주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픽션 클래스 선전을 한다. 1주에 한번 12번에 800불. 누가 소설 쓰는 것을 돈 주고 배울 사람이 있나? 도둑들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저절로 쓰여지는 것이지 의학이나 법학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작가 지망생들은 강사 주위로 꾸역 꾸역 모여든다. 그렇게 대단한 강의면 강사, 당신은 왜 베스트셀러를 못 썼나? 그 사실을 알고도 모여드는 이놈들은 또 뭔가? 물론 그 사람의 작품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내 이름이 데이빗 앤더슨이니까. 적어도 내년이면 이곳 서점의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내가 등장할 것이니 잘 봐 두시지, 비듬이 검은 티셔츠에 떨어진 점원 양반. 안내 데스크에서 서성거리고 있을때, 강사와 스티븐킹, 제프리 유진, 존 스타인백이 함께 문을 나선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려나 보다. 결코 완성되지 않을 소설에 대하여, 그들의 숨겨진 천재성에 대하여,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356페이지 짜리 장편소설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하여. 내게 기발한 소재를 달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