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핸드폰

내 머릿속에는 핸드폰이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지우개가 여자 주인공의 머릿속에는 들어있지 않아 무척 실망했다. 그런데 실제로 내 머릿속에는 애니콜 SCH-V890 이 들어가 있다. 전화가 오면 진동모드라 머리가 찌르르르 하며 울리기도 하고, 다운로드 받은 최신 노래가 울리기도 한다. 자칫 볼륨을 높여놓으면 길바닥에 데굴 데굴 구를 정도로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처음엔 핸드폰을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날은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셨다. 늘 마시는 친구들과 왜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심야 택시 할증요금을 낼 정도로 가치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쩌면 지하철 표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새벽 두 시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또 난쟁이 짓인가? 택시를 잡기 위해 달려가기엔 너무 늦었고 포기하기엔 이른 어정쩡한 순간이었다. 아직 할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한숨.

집으로 돌아와 0**-375-7518을 눌렀다. 택시기사가 받길, 혹은 착한 여고생 손님이 받길, 변태 남자는 받지 말길, 이라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배경음악으로는 아직도 정겨운 공일오비의 텅빈거리에서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3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면서 울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핸드폰이 진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