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2014_8_20
“또 샐러드야?”
“응. 매일 점심으로 이걸 먹어야 해. 이번엔 상큼한 레몬을 뿌렸어. 맛있어. 다이어트도 할 수 있고.”
양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레몬 드레싱. 아내는 자신의 얼굴보다 큰 그릇에 그것들을 마구 섞어서 포크로 먹고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지만 홈쇼핑과 대출광고만 나올 뿐이다.
눈을 돌려 아내가 샐러드를 우그적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을 본다. 아내는 친구가 몰라보게 살을 뺀 것을 보고 다이어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물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많다)을 나누고, 다이어트 코크와 무설탕 아이스크림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늘 샐러드다. 저녁엔 일찍 밥을 먹는다. 밥은 반공기만 먹고 고기는 가급적 먹지 않는다. 야식의 유혹을 버리기 위해 일찍 잔다. 한 달 정도 됐나? 내가 보기엔 몸무게가 그닥 변한 것 같지 않다.
“매일 매일 똑같은 걸 먹으면 질리지 않아?”
또 다시 리모컨을 돌려보지만 중간에서 시작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나올 뿐이다. 티브이 채널은 계속 올라간다. 1초에 한 번씩 채널이 변하는 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지. 맛도 괜찮아. 당신도 한번 다이어트를 해보지 그래? 튀어나온 배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섹시하지 않다고.”
아내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살을 빼야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다. 아랫배가 약간 나왔어도, 언제나 나를 평균 정도의 키에 평균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살을 빼기를 포기한 비만 남성인 것처럼 느껴졌다.
셔츠 속에 손을 집어넣어 배를 만져 본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뱃속에서 꾸물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 속에는 무서운 것들이 숨어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신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나는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패티가 두개 들어가 있고, 치즈가 녹아내리는 중간에 번이 하나 들어간 빅맥을… 먹고 나면 손과 입에서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셔츠에는 캐첩이나 마요네즈 자국이 남겠지.
밤에 갑자기 출출해질 때가 있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샐러드 따위 밖에 없기 때문에 집을 나선다. 스물 네 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에 들러 빅맥을 사 먹는다. 어제 밤도 마찬가지였다. 반쯤 먹다가 남긴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새벽에 잠이 깼다. 아내가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침실로 가려다 부엌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봤다. 냉장고 안의 불빛 사이로 아내가 부엌 바닥에 잠옷차림으로 앉아 뭔가를 먹고 있었다. 내가 남겨온 빅맥이었다. 못 본 척 하고 소리나지 않게 안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나처럼 소리나지 않게 살금살금 침대로 다시 돌아올 때 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 아내가 옆자리에 눕자 역겨운 햄버거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아내는 샐러드를 다 먹고 빈 그릇을 멍하니 쳐다본다.
“갑자기 배가고파 지는데…”
나는 텔레비전을 끈다.
“배 안고파?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으려고 하는데…”
아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이내 그 말을 꺼낸 것을 후회했다.
“당신은 다이어트 따위는 안 해도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아직까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뚱뚱하지도 않은 걸. 15킬로그램을 뺐다는 그 친구? 흥, 하나도 안 부럽다고. 살을 빼도 여전히 못생겼어. 당신만큼은 못 따라오지”
아내가 웃지 않는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 피식거리며 웃다가 어색해져서 지갑과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럴 땐 피해야 한다.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냐.”
내가 방을 나가려고 할 때, 아내가 등 뒤에서 힘없이 말했다.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워 보일 때가 있는걸…  다이어트를 해도 그건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
부스럭거리며 아내가 일어서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같이 가자. 하지만 햄버거는 몸에 좋지 않아.”
“그럼 어딜 가자고?”
“잔말 말고 따라와.”
삐리리,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닫혔다.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아내는 뚜벅 뚜벅 걸어갔다. 나는 뒷굽이 구겨진 운동화를 대충 신고 아내를 따라나섰다. 어디를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photo by Sam Dal Monte https://flic.kr/p/9H6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