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풍선들의 천국

20140831

방금 전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바이킹을 타고 비명을 지르는 엄마와 아빠를 구경하다 나도 몰래 손에 힘이 스르르 빠져버린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키가 작아서, 저런 놀이기구는 타지 못한다. 고함을 지르는 어른들보다 의젓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 아빠는 사이가 너무 좋은 게 흠이다. 오랜 만에 나를 위해 놀이동산에 왔다지만 자기들 끼리 신이 나서 놀고 있다. 나한테는 겨우 빨간 풍선 하나를 쥐어주고.
“어머 희진아, 풍선은 어디갔어?”
바이킹을 타고 나온 엄마가 묻는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다. 나는 입을 주욱 내밀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날아가버렸구나. 아까운데… 또 사면 되지.”
아빠는 늘 저런 식이다. 하늘로 날아간 풍선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닌데.
“여보, 이번엔 뭘 탈까?”
“당연히 롤러코스터.”
“꺄아….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 어떡해. 줄이 엄청나게 기니까 빨리 가야겠어.”
아빠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준다.
“풍선도 하나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있어. 엄마 아빠는 금방 다녀올게.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야 한다.”
고개도 끄덕이기 전에 엄마 아빠는 룰루 랄라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버렸다.
돈을 주머니에 쑤셔 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풍선 파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공원 입구에서 풍선을 샀다. 하지만 그곳까지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파는 곳을 지나 작은 폭포가 흐르는 곳을 지나쳤다. 폭포 주변에는 빨갛고 노란 튤립도 피어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동굴이 보였다. 내가 있었던 위치를 확인했다. 훗, 설마 미아가 되진 않겠지. 나는 천천히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입구 반대편에서 환한 빛이 비추었기 때문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별 달라진 게 없다. 탈것과 먹을 것이 가득한 놀이동산일 뿐이다. 반대편 보다는 조금 더 알록달록하다. 사람도 붐비지 않는다. 분수 앞에 미키마우스가 커다란 노란 풍선을 들고 있다. 마침 잘 됐다.
“이거 얼마에요?”
“파는 게 아냐.”
“저한테 파세요. 풍선을 하나 잃어버려서 기분이 우울해요.”
미키마우스는 손을 턱에 갖다 대고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다.
“우리 친구는 놀이동산에서 왜 우울한 걸까?”
“이런데 와 봤자 재미 없거든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은 키가 작아서 타지도 못해요. 그런 건 어른들이나 좋아하죠.”
줄이 꽤나 길던데 엄마 아빠는 롤러코스터를 탔는지 모르겠다.
“어린 아이 용도 있어.”
미키마우스는 한쪽으로 손을 가리킨다.
“그건 너무 시시해. 풍선이나 주세요.”
“얼마를 줄 수 있지?”
“만원이요.”
미키마우스는 손으로 턱을 만지작 거린다.
“파는 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네가 우울하다고 하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커다란 마스크 안에 누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언제 미키마우스의 마음이 바뀔지 몰라 풍선을 사버렸다.
“조심해, 이걸 타고 날아가는 수가 있어.”
저는 그런 허풍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지는 않아요.
“특수 가스가 들어있어서 햇빛을 오래 받으면 부력이 열배는 강해져.”
네네, 알겠습니다. 나는 풍선을 들고 사뿐 사뿐 걸었다. 풍선이 달린 줄을 받아든 순간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어라. 햇빛이 따갑다고 느껴지는 순간 몸이 두둥실 하늘로 올라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풍선에 연결된 줄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어야 했으니까. 몇몇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몇몇 아이들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미키마우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하늘 위로 올라갔다. 바이킹보다, 롤러코스터보다 훨씬 재밌는 걸. 하늘로 올라갈수록 햇빛은 더 강해지고 풍선도 점점 더 커졌다. 아래를 보니 놀이동산이 조그맣게 보이고 더덕더덕 붙어 있는 아파트가 레고처럼 보이고, 고속도로와 강이 보였다. 새들이 지나가다가 나를 피했다.
십분 쯤 계속 위로 날아가다가 구름을 만나게 되었다. 푹신하지 않을까? 솜사탕 맛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뿌연 안개 속을 통과하는 것과 똑같아서 실망했다. 구름 위에는 무지개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풍선이 천천히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천천히 두둥실 떠내려갔다.
멀리 빨갛고, 파랗고, 노란 점들이 보였다. 나의 노란 풍선은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것들을 향해서 날아갔다. 점들은 점점 커졌다. 아, 저것들이 무엇인지 알겠다. 풍선들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가 빽빽하게 구름처럼 모여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풍선들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항상 궁금했다. 엄마는 다른 나라에 떨어진다고 했고 아빠는 하늘에서 터져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정답을 안다. 어린이날 행사 때 하늘로 날려버린 수많은 풍선들도 이곳에 있었구나.
키가 크지 않아도, 나이가 많지 않아도, 돈을 내지 않아도,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놀이동산. 나는 풍선들 위에서 드러누웠다가, 퐁퐁을 타는 것처럼 뛰다가, 달렸다. 풍선이 푹신푹신해서 넘어져도 아프지 않았다. 발을 구르면 내 키보다 높이 뛸 수 있었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기는 문제없었다. 내가 놀고 싶은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아무런 간섭 없이 혼자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곳.
한참동안 신나게 놀다가 지쳐버렸다. 자, 이제 집에 가야지.
나의 커다란 노란 풍선을 쥐었다. 어떻게 돌아 가냐고? 머리에 핀이 세 개나 있다. 일단 푹, 하고 핀으로 풍선을 조심스럽게 찔러 보았다. 쉬이이익 하면서 공기가 조금씩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구름을 통과하니 마을이 보이고, 자동차도 보이고 놀이동산도 보였다. 아래로, 더 아래로. 분수 옆자리로 가뿐히 내려왔다. 미키마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을 통과해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십 분쯤 지나 엄마 아빠가 돌아왔다.
“미안, 미안. 줄이 너무 길어서 너무 늦었지?”
엄마가 말했다.
“으…응.”
“풍선은 샀니?”
나는 한 손에 든 풍선을 내밀었다.
“뭐야? 바람이 다 빠졌잖아?”
엄마 아빠는 뭐가 좋은지 한참을 웃어댔다.

photo by Tijmen Kielen https://flic.kr/p/4VsS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