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알을 맞춘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기스가 많이 났다. 이유는? 겨울에 목욕을 많이 해서 그런지도. 시골 동네지만 안경점이 한 가운데 있어서, 그것도 서너달 전에 오픈을 했다, 가격을 물어봤다. 새로 단장한 탓에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지만 손님은 없었다. 주인장도 어쩐지, 엄마가 차려줘서 억지로 하고 있어요, 라는 표정의 젊은이었다. 팜플릿 하나를 내밀며 생각보다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평생 안경을 꼈기 때문에 가격과 품질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는데. 그게 엄청 좋은 거라면 설명을 해야 할 텐데 그런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안경의 코팅은 점점 벗겨져서 세상이 원래 좀 뿌옇다고 여겨질 즈음, 성산일출봉 근처의 고산리에 갈 기회가 생겼다. 심심해서 그 동네의 도서관에 갈려는 계획이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안경점이 있는지도 확인해 봤다. 밝은 빛 안경. 간판도 삼 사십년은 족히 보이는 곳에 사장님도 중후하셔서 믿음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가격도 적절하고 잠시 맡겨두고 근처 빵집에 다녀왔더니 안경테까지 손을 봐 주어서 말끔해졌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안경점을 하신 지 사십 년이 넘었단다. 역시나.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일하는 건 의미 있는 삶일까? 그렇다고 돈을 벌지 않는 삶이 낫다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철학이 없는 삶이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인 것 같다. 새 안경점의 젊은이도 참, 힘들게 살고 있다. 근처에 안경점이 두 개나 새로 생겼으니까. 소설가는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처럼 보여도 억지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마감에 급급해서 쓰는 글, 당장 돈이 필요해서 쓰는 글 등등.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 글을 쓰는 동안, 진짜 원하는 글을 쓸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