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하철 박물관

deadsub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은 박물관에 가기에 딱 좋은 날이다. 화창한 밖을 놔두고 어둡고 퀴퀴한 곳에서 오래된 것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만들었던 것을 구경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으니까. 뉴욕의 지하철에 일어나는 일을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뉴욕 지하철 박물관에 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아침 비가 내렸던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맨하턴에서 부루클린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다리로 건너는 방법도 있지만 R트레인은 지하로 내려간다. 오클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바트를 타고 가는것 만큼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터널 위로 강물이 흐른다고 생각하니 스멀스멀 불안함이 밀려들어왔다. 혹시나 터널 위에 구멍이라도 생긴다면 압력이 대단한 물호스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하철 박물관은 그 터널을 지나 브루클린 입구에 있었다. 사방으로 물이 가득찬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지하철 박물관이 보통 박물관처럼 오래된 건물이겠거니 하는 기대는 입구에서부터 무너졌다. 지하철 박물관은 실제로 있었던 지하철 역(지금은 운행되지 않는)을 개조해서 만든 지하의 박물관이었다. 지하도로 내려가 입구에서 표를 사서 개찰구로 들어간다. (물론 표값은 지하철 표값보다 훨씬 비싸다) 지하 1층 복도에는 지하철의 역사와 80년에서 100년 전에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브로드웨이 따라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떠받치고 공사를 하느라고 꽤나 힘들었을 법한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초기엔 여러 회사들이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지하철을 경쟁적으로 지었단다. 회사의 이름도 여러가지고 루트도 여러가지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확한 뉴욕의 지하철 구조도는 없다. 버려진 역, 터널 안에서 두더지 인간들이 살았다. 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 중의 한 명이 된다.

다시 한 층을 내려가면 진짜 승강장이 나오고, 진짜 트랙에 진짜 전차가 서 있다. 그 전차는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 죽은지하철이다. 죽은 지하철이 일렬로 주욱 서 있는 광경은 어떤 종류의 감동을 준다. 승강장 양쪽에 각기 다른 전철이 끝도 없이 주욱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연도별로 한두칸씩 이제는 사라진 전철들이 내부 광고판까지 보존된채 영원히 세워져 있었다. 마음대로 그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앉아볼 수도 있다. 비가 온 탓인지 유럽에서 온 듯한 남자 커플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비가오면 박물관에 가는 것 보다는 집에 있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진이 소설을 쓸때 필요할 것 같은 생각에 한칸에 한 컷씩 사진을 찍었다. 초기 전차는 보다 투박하고 기차의 느낌이 더 났다. 천장의 작은 선풍기로 열기를 식혔을 걸 생각하니 여름에 기차를 타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동정이 가기도 했다. 열차마다 제각각 의자의 배치도 달랐다. 가로 의자 등을 창으로 향하는 의자, 어느 열차는 의자가 많이 없고 어느 열차는 의자가 꽉 차있다. 열차 안의 지하철 안내 지도는 열차마다 조금씩 달라서 어떻게 거미줄처럼 지하철이 뻗어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하철 안 광고판.

“100명중의 84명의 여성들이 모자를 쓴 남자를 더 좋아합니다.”
그 당시에는 정말 그랬을까? 지금은 아닌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죽은지하철 박물관에는 인기척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나는 맨 끝의 가장오래된 전차에 앉아 꾸뻑 졸고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깬건 전차가 흔들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잠에서 깨어난것 처럼 덜컹, 덜컹, 죽은 지하철이 소리를 내며 살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