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2009.12.31

ori (22)

12월의 마지막,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정말 별 일없이 보냈다. 약속도 만들지 않았고(요즘 사회 생활 이란게 점점 없어지지만), 부모님 집에도 가지 않고 돌양과 처남,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보내고 있다. 낮에 잠시 파파이스 치킨과 다리집 떡볶이를 먹으러 간 것 말고는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굉장히 추워서 광안대교에 해돋이를 보러갈 계획을 취소했다. 문득 내가 추위를 무척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됬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서 하와이로 가야할 이유 하나 더 추가. 아침에는 단편소설 수정을 좀 더 했다. 역시, 맘에 안 들었다. 짠,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캐릭터에 애정이 있거나 새로운 통찰이 있어야 하는데 전무하다. 차라리 살짝 넘기고 다른 소설을 수정하는게 좋겠다.

올해는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스트레스 레벨이 높은 것들이었다. 하나는 결혼식이고(이건 해피앤딩이라 패스), 또 하나는 장편소설 뱀파이어 K의 탈고 실패. 물론 미국에 잠시 미리 신혼여행을 갔다오기도 했고 국내에도 여기저가 다녀온 좋은 기억이 있다. 다행히 뉴욕 서점 순례기가 맘에 들게 탈고가 되었고, 새로운 소설 아이디어도 얻었지만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주요한>일이 결실을 맺지 못한 건 큰 타격이었다.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모두 있는데 둘 다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내부적으로는 욕심을 내지 말고 쓰고 싶은 걸 먼저 쓸 것. 외부적으로는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일을 하지 말것. 이 두가지 교훈을 얻었다. 내년에 할 일들을 엑셀로 정리해 보았다. 왠지 엑셀로 정리하면 마음속의 복잡한 일들도 죄다 셀 속으로 들어가 착착 정렬이 되는 것같다. 역시,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눈에 훤히 보였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다 읽었다. 굉장히 좋은 소설. 스타일을 과시하지 않고 따뜻한 가족간의 감정을 잘 살렸다. 멋있다. 2009년 마지막 날에 읽었지만 2009년 베스트로 쳐 준다. 이런 소설을 읽기 위해서 100권의 그저 그런 소설을 읽는 것이다. 누구나에게 멋진 소설은 아니겠지만 자신과 통하는 소설을 찾는 노력은 계속 해야 하는 것 같다.

내년은 2010년 호랑이의 해. 바로 나의 해다. 띠도 호랑이고, 뭔가 좋은 일이 잔뜩 생겼으면 한다.

TUE 2009.12.29

오래된 여관의 개인 온천탕. 타일식, 물도 콸콸나옵니다.
오래된 여관의 개인 온천탕. 타일식, 물도 콸콸나옵니다.
오래된 온천 여관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목욕을 했다. 역시 물이 좋아서 피부가 매끈 매끈. 원래 이 건물은 70년대 2층짜리 였다는 것이 복도의 액자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4층) 예전엔 이렇게 타일로 외관을 장식하지도 않았고 하얀 페인트에 한자로 이름이 적혀 있었을 뿐이다. 차라리 그 편이 좀 더 고즈넉한데. 오래된 소나무도 멋있고. 지금은 증축을 하고 타일을 붙였지만 그게 더 촌스럽게 보일 뿐이다. 뭐라고 할까, 50년 전의 건물은 오래된 멋이 나지만 10년 전의 건물은 구리게 보이는 것과 같다. 아침의 해운대 바다는 눈이 부셔서 뜰 수 없을 정도 였다. 바람은 굉장히 춥고 햇살은 따스해서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를 정도. 더블샷 커피를 한잔 들이키면서 책을 좀 읽다가 이른 점심을 먹었다. 요즘 돌양은 쇠고기를 좋아하는데, 한우 음식점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우리 가난한 신혼 부부는 호주산 소고기를 주로 사먹다가(그래도 미국산은 구입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한우고기를 먹으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는 아니고 맛있는 정도. 사실 요즘 나는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별로 나지 않는다. 어차피 단백질인걸.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비싼 음식과 싼 음식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재료가 신선하고 재대로인 것은 좋다. 그러나 수입한 것, 아니면 터무니없이 비싼것을 꼭 먹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점심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맛있었으니 좋았다.

집에 와서는 다시, 더러운 나이키 운동화를 썼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러 영 딴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변해도 상관 없다. 어차피 5년 전에 쓴 단편소설이 그 때와 똑같다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나는 내가 쓴 소설의 캐릭터나 사건이 진부하지만 않았으면 한다. 훌륭할 필요도 없고 큰 감동을 줄 필요도 없다. 그저 어, 이런 것도 있었네, 만 되더라도 성공. 세상엔 너무 비슷한 이야기가 많고, 클리셰로 도배되어 있다. 비단 영화와 책 뿐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어느 누구도 진심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리지널리티를 발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씩 그런 사람을 만난다. 당신을 천연 기념물로 지정하겠소.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은 최소한 오리지널리티는 갖고 있었으면 한다. 내 스스로가 잘 빠지는 관습적인 이야기에서 탈피하는게 급선무겠지만 말이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한페이지 단편소설 사람들과 연말 모임을 가졌다. 20대 초반의 멤버가 가장 나이 어리고 50대도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고 5년 넘게 만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들 글을 즐겨 쓰는 사람들이라 몇 마디 이야기만 해도 뭔가 잘 통하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들은 어디가서 자신의 취미가 글쓰기라고 말하기 힘들겠지. 사실 나도 소설가라고 말하고 다니기가 힘든데 뭐. 후후. 그러나 이 자리에서 만큼은 글과 관계 있든 없든 좀더 편안하게 한 거풀 벗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H군이 준비한 책 교환 이벤트, 1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 이벤트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유부남은 나 혼자일세. 어허. 기뻐해야 말아야 하나.

Mon 2009.12.28

결혼식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도우미아주머니가 상을 잡고 있어야 했다.
결혼식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도우미아주머니가 상을 잡고 있어야 했다.

지난 밤 자기 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하나는 미국 대륙횡단기의 아이디어. 여행기는 대충 정리했는데 어떤 식의 이야기로 풀어나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난 건 2005년 정도에 적어둔 Joshua Michico 시리즈다. 편지 형식으로 이어진 간단한 편지글.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미치코와 나는 연인 관계였지만 그녀는 나를 버리고 나이많은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것이 영주권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자동차 사고로 미치코는 죽게 되고 나는 어느날 그녀의 남편에게 편지를 받는다. / 여기까지가 차용할 부분의 앞부분. 새로운 버젼은 이 부분에서 ‘나는 그의 편지를 받고 뉴욕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그녀는 미국 대륙 횡단을 하고 싶어 했다.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로. 단 둘이. 그녀가 가고 싶어 했던 도시를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랑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고 말하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아무튼 애써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예전에 이미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어떻게 쓰일지는 알지 못했다. 완성하지도 못하고 그냥 묵어둔 글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고로, 뭔가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짧은 글이나마 구상해 두는게 좋은 것 같다. 긴 장편도, 단편도 어차피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서 나오는 거니까. 두번 째 아이디어는 뱀파이어 케이의 세팅이다. 이건 말하기가 약간 복잡하므로 패스.

아침에는 문예지에 낼 단편소설을 수정했다. 내가 처음 어디에 투고한 최초의 소설인데, 투고한 곳은 다름 아닌 문화잡지 보일라다. 그 때에 가장 짧은 아이디어 소설쓰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이디어가 무궁 무진해서 별의 별 이야기를 A4 서너장으로 썼던 것 같다. ‘나의 더러운 나이키 운동화는 어디로 사라졌나’ 라는 단편으로 지하철 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5년만인가? 이걸 새로 고치려니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였는데 분량을 두배로 늘여보니 뭐가뭔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지난 주 까지 다른 단편을 한참을 쓰다 완성하고 12월 초에 고쳤던 걸 다시 들여다 보니 가관이다. 예전에 쓴걸 재활용하기 보다는 새로운 마음으로 써야 할 듯. 지하철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잊어버려 분실물 보관소에 갔다가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 인데 이야기 자체의 독특함으로 묻어가기 보다는 개인적인 동기나 감정을 좀더 살리고 싶다. 이번주에 완성해야 할듯.

기타는 역시 메트로놈을 켜놓고 연습을 해야 한다. 러스스토리를 아무리 연습해도 잘 되지 않았는데 며칠 동안 메트로놈을 켜 놓고(65정도의 거북이 빠르기로) 쳐보니 금방 연주실력이 늘었다. 올해 4곡 정도를 마스터 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코드보다는 개별 곡의 핑거링에 주력하고 있다. 즉, 피아노를 칠때 기본기를 닦는 연습곡을 치는게 아니라 좋아하는 곡을 죽어랴 연습해서 한곡을 완성하는 거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캐논을 피아노로 쳐본적이 있다. 피아노는 기타보다 서너배의 더 강도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건 컴퓨터로 금방 입력하면 되잖아! 라고 연습이 잘 되지 않을때 생각하지만, 어쿠스틱 악기를 직접 손으로 연주하는 즐거움은(잘 치면 감동에 가깝다) 그냥 음을 재대로 낸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줄 하나 하나를 어떻게 잡느냐, 어떻게 튕기느냐에 따라 소리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게다가 악보를 연주하면 작곡자들이 얼마나 천재인제도 알게 된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뉴욕 서점 순례기 내지 디자인을 돌양이 마쳤기에 서울로 전송하고 어디론가 놀러를 갈 계획이었다. 지방에 있는 온천을 검색하다가 부산의 해운대 온천, 동래온천이 꽤나 역사가 깊고, 효과가 좋다는 걸 발견했다. 그렇다. 자기가 사는 곳의 가치는 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동래 온천이야 허심청을 몇 번 가봐서 알고 해운대 온천은 지나가 보기만 했지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건 몇 개의 온천탕이 여관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지하에서 바로 끌어올린 해수원천수로 따로 물을 끓이지 않고 제공한다. 좀 오래된 것이 흠이긴 하지만 물 하나는 끝내줘서 류마티스 관절염 피부병 아토피에 좋단다. 물 하나가 뭐 그리 만병 통치약이겠냐만은, 멀리 울진 같은 곳을 가려는 계획을 수정해서 해운대에 왔다. 그리고 지금은 숙소 근처의 피시방이다. 목욕탕과 여관을 함께 하는 곳인데 여관의 시설은 뭐 별로 내세울건 없고, 욕탕이 땅 아래로 파서 만든 네모난 타일 욕조다. 적당히 깊고 커서 두사람이 들어가 있어도 된다. 목욕을 할 때에는 잘 몰랐는데 뭘 먹으로 밖에 나오니 피부에 얇은 막이 한겹 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당기지 않는다. 오호, 뭔가 좋은 성분이 있는 걸. 안내문을 보니 신라시대 진성여왕이 피부병을 고쳤고, 대마도에 사는 왜구들이 몰려와서 온천을 막을 정도였다나. 나병 환자들도 병을 고치러 왔단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의 현대적인 온천 시설 하나를 제외하고 지은지 4,50년 된 온천 목욕탕의 시설은 제자리다. 신기한건 헤어드라이어와 빗이 각 층에 있다는 것. 14인치 텔레비젼이 각 방에 있다는 것. 미니 냉장고의 미에로 화이바를 마셨다가 그게 *** 화이바 라는 짝퉁이었다는 것 정도다. 문득 해운대의 다른 오래된 온천 여관도 탐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도 찍었으니 나중에 공개. 물론 돌양과 함께 왔다. 부부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숙박시설에 가는 것 같은데 왠지 ‘저희 부분데요. 이상한 커플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예전에 떳떳하지 않게 모텔이나 호텔을 다녔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거다.

저녁에 전우치를 봤는데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