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2010.12.23

세미와 엄마, 누나와 함께 광복동 거리를 걸었다. 요즘 한참 루미나리에 트리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서 이 근방은 교통 통제가 되고 있다. 반짝 반짝 빛나는 불빛이 구 다운타운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으며 여러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가령, 레드 카펫 사진 존, 불빛 곰돌이, 불빛 날개 등등. 일부러 조카와 엄마, 누나까지 불러 구경시켜 주었다. 평사리 가는길, 에서 맛있는 저녁도 먹고 말이다. 엄마는 밖에서 저녁을 사드린다고 하면 자식들이 돈을 쓸까봐 전전 긍긍하신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우리집안은 외식 같은 걸 해 본적이 없다.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외식 자체를 부모님이 싫어했던 것 같다. 전라도 출신힌 부모님은 밖에서 파는 음식이 맛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난 뒤에야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왜 밥집이 집에서 파는 밥보다 훠얼씬 맛이 없는지 이해가되지 않았다.

광복동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반면, 돌양이 가게를 하고 있는 광안리로 가보니 사람이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선물을 구입하는 때가 아닌가 싶었지만 바닷가 주변은 횡했다. 광복동 거리처럼 바닷가에 반짝 반짝하는 트리라도 달아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글쎄. 가게로 가니 나의 크리스 마스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둥, 돌양이 아이패드를 선물한 것이다. 이건 돌양 스럽지 않은 지출 규모의 선물이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있나 보다. 하.하.

기욤미소의 소설 ‘그 후에’를 휘리릭 반쯤 읽었다. 프랑스 출신의 이 작가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인기를 끈다고 해서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읽은 바에 따르면 너무 얄팍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식이라는 건 알겠지만 소설이라면 전형적인 것에 뭔가 더 깊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차라리 영화를 보는게 나을 지도. 비슷하지만 다른 예로 빅 픽쳐라는 소설을 들 수 있다. 뻔하지만 분명 빅 픽쳐는 영화를 능가하는 박진감이 있었던 것이다. 반전이 있다고 하니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글쎄. 이런 소설을 예닐곱개나 내고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지만 그리 부럽지 않다. 아닌가? 사람들은 이런 뻔한 이야기를 바라는가? 흐음.

WED 2010.12.22

오랜만에 기타줄을 갈았다. 올해 초에 3개월정도 기타 강습을 배울 때 갈고는 처음이었다. 가는 세 줄을 클래식 기타줄로 갈아보았으나 생각보다 소리는 좋지 않았다. 조율도 칠 때마다 다시 해줘야 하는 번거러움도 있었고.(나일론 줄은 잘 변하는가 보다.) 요즘에 연습하는 곡은 문 리버(Moon River)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햅번이 치면서 노래부르는 버전이 아니라 멜로디와 화음이 같이 들어가는 연주곡 버전이다. 영화 음악 기타 반주집에 있는 것인데 작년만 하더라도 ‘이런 걸 어떻게 연주해?’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여러 가지 코드를 배우고 나지 운지법을 알아서 손가락을 어떻게 해야 편하게 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쓰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런 걸 어떻게 써’ 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어느 정도 표현법이나 구성을 익히게 되면 나중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물론, 이건 포스트 모던-장르 복합-뱀파이어물을 조금 뒤에 멋있게 쓸 수 있을 거라는 나의 희망이자 변명이다)

오전엔 계속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고치고 있고 오후에 시간이 조금씩 남는다. 생각 같아서는 다른 소설을 동시에 쓰고 싶지만 그건 Over – Writing 같다. 많이 쓴다고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쓴다고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단련된 작가들이 시간만을 써서 내 놓은 수많은 책들을 알고 있다. 판매여부와 상관없이 과연 그런 책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인문학이나 철학, 과학 서적도 그런 책은 의미 없겠지만 소설이라면 더욱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건 노동에 가깝고, 일정 수준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쪽으로 노동을 하는게 낫다.) 되도록 글쓰기와는 상관 없는 것, 상관 있더라도 소설과는 관련 없는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또 다시 번역을 하기 위해 책을 꺼냈는데, 헨리 8세의 러브레터를 번역하려고 했다. 과연 이것이 15세기 영국에서 쓰여진 편지일까 일단 궁금했다. 아뿔싸, 첫 문장부터 해석하기 어렵다. 단어를 모르는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문맥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 불린을 얻기 위해 종교개혁까지 했던 왕의 연애편지를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도 숙종과 장희빈의 예가 있다.

유난히 날씨가 따뜻했다. 보동이와 광안리 해변을 산책하는데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 단짝이었는데 유일하게 초등학교 계모임 멤버 중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헤어진 (세 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30분간 나누었다. 회사에서 느긋한 직종에 근무해서 가능한 거겠지. 아무튼, 동창은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소개로 한사람을 만났고(일기에도 종종 언급된 누구다), 그게 잘 안돼서 또 다른 남자를 소개받은 것이다. 이 남자는 초기에 문자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연락이 뜸해지고, 밀고 당기게 되고, 결국 연락이 없어서 헤어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연애를 해 본지가 꽤 오래 돼서 감각이 사라졌나? 남자가 약간 떨어진 곳에 산다고 해도 어떻게 문자 몇 통으로 계속 안부를 전하고, 뭔가를 재보고, 연락을 안 하면 헤어지는 것으로 간주가 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문자 몇 자에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과연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니면, 너무 머리가 커져서 연애를 하면 이것 저것 따지게 되어버려 연애를 쉽게 할 수 없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동창이 내게 말해본들 내가 속 시원하게 답을 줄 수 없지만(나는 평범한 남자 대표가 안 된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건 고만고만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일 바에 그냥 멋지게 살아라, 였다. 자신이 더 멋있어지면 자연스럽게 멋있는 남자를 만나게 될 거라고. 흐음, 생각해보니 너무 이론적이다.

MON 2010.12.20

어떻게 산책을 하다보니 민주공원까지 가게 되었다. 날씨도 굉장히 따뜻해서 봄날 같았지만(아마 15도 정도), 우리나라 안보 상황은 굉장히 차가웠다.(다행히 별 일 없이 지났다). 부산에서 아직까지 원래의 부산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꼽으라면 민주 공원으로 올라가는 산복도로에 있는 동네라고 말하겠다. 이 지역이 50년 100년 전의 모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30년 정도 전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다. 중요한 건, 집들이 높은 산에 있을 뿐더러 다다닥 붙어 있고, 고급 아파트가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에 개발이 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부산항을 떠억 하니 아래로 보고 있는 오래된 주택, 연립주택들은 부산 시내에서 가장 전망 좋은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 샘이다. 남항대교가 완성된다면(지금은 중간 구조물만 세워져 있다) 더 그럴싸해지겠지. 산꼭대기 까지 마을버스와 일반버스가 다닌다. 가파른 경사라 주차장이 옥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 군데 군데 계단이 있어서 아래쪽 도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 아파트에는 해가 지는 쪽으로 알록달록한 담요와 빨래를 걸어 놓았다. 산 중턱에 학교도 몇개 있다. 민주 공원 바로 옆에는 중앙 도서관이 있고.(여기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치 좋은 도서관일 것이다) 문득, 이런 곳에 집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값도 굉장히 쌀 것이다. 하지만 금방 후회하겠지. 경치는 좋지만 어디론가로 가려고 하면 한참을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하니까. 하지만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광복로에 들렀는데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아예 도로를 막아놓고 트리 축제를 하고 있었다. 소원을 적어서 거는 트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걸어서 나무가 쓰러질 것 같이 아슬하슬하게 보였다. 캐롤도 틀어 놓았고, 솜사탕도 팔고, 사진찍는 곳도 여기 저기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불빛이 반짝 반짝 거렸고. 이런 곳에 가장 현혹 되는 사람들은 1. 아이들 2. 젊은 여자 3 노인들 순인 것 같다. 나는 4. 아저씨 정도가 될 건데, 자세히 구경하기 보다는 후다닥 그 길을 통과하고 서점으로 점프해서 들어갔다. 신간을 살펴보다가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충동 구매했다. 돌양에게 오늘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받은 다이어리를 선물받았지만 집 책상에서 쓸 것도 왠지 필요할 것 같았다. 뭐 또 그걸 사다보니 다른 잡지와 이것저것을 사다가…또 다른 팬시점에 들러 예정에 없던 크리마스 쇼핑을 하게 되었다. 아, 정말 올해가 다 가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