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2011.12.18

2011_12_18

배선생님이 매주 우쿨렐레를 치러 오신다. 레슨비 대신 밥을 사주시는데, 오늘은 우리집 근처가 아니라 선생님댁 근처에서 보자고 하셨다. 거기까지 달려서 오라는데 우리야 뭐, 게으르니까 택시를 타고 휘리릭 5분만에 갔다. 추운건 딱 싫어하거든. 밥은 우리도 아는 오리정식집(돌양 후배의 부모님이 하시는 곳인데 그 후배도 일을 돕는다. 벽에 시골 마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게 선제 후배 솜씨다) 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이상하게 이 집의 나물들, 반찬들이 신선하고 맛있다) 카페로 갔다. 선생님이 꼭 보여주고 싶다는 곳인데 나도 가끔 가곤했던(지금은 다른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므로) 도서관 앞에 있는 작은 카페다. 주인장이 실용음악 학원을 하다가 가족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만든 곳이란다. 1층이 카페, 2층이 작업실 겸 녹음실, 3층이 집인데 스무평 남짓한 마당 없는 이 집을 정말 알차게 꾸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건, 우리가 지난해 집을 사려다가 실패하고 지금의 조금 기이한 작업실로 세를 얻어 이사를 온 것이다. 이 분은 꼼꼼한 성격이라 일년동안 꾸준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단다. 처음엔 우리처럼 마당있는 가정집을 찾아다녔는데, 구하다 보니 좁지만 마당이 없는, 3층짜리 집이 실속있다는 걸 깨달았단다. 게다가 도서관 앞이다.(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로망) 지하철도 조금만 걸어가면, 버스도 바로 앞, 그런데 어쩐지 시골 분위기도 나는 따뜻한 곳이라고 할까? 우리도 앞으로 이런 집을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용 음악을 오랫동안 하셔서 내가 배울 것도 많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부탁을 했다. 다음에 꼭 작곡법을 배우러 오겠습니다, 어쩌면 팟캐스트를 이곳에서 녹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하겠다고 결의 했던 컴퓨터 음악도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2층엔 웬만한 음반을 녹음할 수 있는 수준의 녹음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뭐야 이사람? 나의 로망을 다 이루다니. 후후훗. 하지만 이 분도 카페를 만들면서 겪은 일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로망을 갖고 계셨다. 다들 자기가 이룬 로망 이외에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 하면서 뭔가 이루고 싶은 로망을 한 두 개 정도는 갖고 있느 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인문학 강좌가 많이 열린단다는 빈빈, 이라는 곳. KBS방송국 뒷편의 여고 가는 길, 벗꽃이 피는 골목으로 유명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곳이다. 이곳도 작지만 2층에다 옥상에는 멋진 테라스가 있다. 어른들을 위한 고전 강좌와 다도 강의를 주로 하는 이곳을 얻기 위해 주인장은 10년을 준비했단다. 10년!!!! 우리는 고작 집을 알아보려고 두달 정도를 헤맸을 뿐이다. 두 달동안 본 집들은 다 이상했다.(예전 일기 참고) 그리고는 절망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돌양은 당장 인터넷에서 작은 집을 뒤져 보았다. 솔직히 나는 집이나 차, 이런 것에 관심은 없다. 어디라도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좀더 편안한 환경이면 글도 좀 효율적으로 쓰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작업실 분위기는 1. 개나 고양이의 배설물냄새 혹은 털이 날리지 않을 것. 2. 시끄럽지 않을 것 3. 내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4. 보일러 빵빵 틀수 있고 여름엔 에어컨 빵빵 틀 수 있을 것. 지금은 이 네가지 조건이 다 갖춰진 곳이면 좋겠다는 것일 뿐.(지금 작업실은 다 만족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은 1,2에 문제가 좀 있다) 아무튼 우리가 집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신 배작가님께 감사. 연배는 우리보다 훨씬 많으시지만 너무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이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일요일에는 어머니가 부르시길래 밥을 먹으러 갔다. 무슨 생일도 아닌데 그냥 부르셨단다. 배추전, 호박전, 소고기 구이, 미역국, 완전 신선한 고등어구이(자갈치에서 공수), 설탕같은 시금치 및 나물 3종 세트 , 김장 김치….완전 환상적인 밥차림이다. 안 그래도 서울에서 내려올 때 청주에 들러서 남은 갈비와 백숙을 싸왔는데, 요즘 다들 우리에게 뭔가 먹을 것을 못줘서 안달 난것 같다. 심지어 북콘서트 때  아주머니 팬에게 김치를 선물로 받았다. 집에 오니 또 집주인 아주머니가 김장 했다고 김치를 주셨다. 냉장고가 터져나갈 것 같다. 돌양은 우리가 아주 아주 복받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FRI 2011.12.16

2011_12_16

서울에서 북콘서트를 했다. 예전에도 몇 번 북콘서트를 한 적이 있지만 내가 원하는 뮤지션과 내가 원하는 게스트를 초대해서 하는 행사는 처음이었다. 북콘서트를 하면 꼭 부르고 싶었던 두 뮤지션은 오소영과 우쿠렐레 피크닉의 조태준, 그리고 토크 게스트는 원고 마감의 압박을 1년째 하고있는 차우진과 이강훈씨. 컨셉은 남자들의 연애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어쨌든 내 책은 러브스토리니까.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가. 기온이 영하 10도를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다 행사 장소에 난방이 조금 부족해서 걱정이 되었다. 6시가 지나자 속속 뮤지션과 게스트 들이 도착하고 사람들도 도착했다. 지난번에도 일기에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행사에 오면 4류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0명 남짓 되는 사람 중 나의 책을 읽고 온 사람은 반 정도가 될 것이고, 다들 나를 정말 만나러 오고 싶었다기 보다는 소설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북콘서트에 간다면 그런 마음일 테니까. 심지어는 꽤나 유명한 작가의 강연회가 부산에 있었는데, 그날 시간을 내서 가 보니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냥 주말에 책을 사러 왔다가 강연장에서 시간을 때우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일곱시 반에 정확히(유명 콘서트는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늦어지지만 이런 행사는 바로 한다)시작되었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마케터 중의 아름다운 분이셨는데, 얼마나 떨었던지 우황청심환을 먹었단다. 관객의 반응이 자기의 생각 같아 보이지 않고, 질문과 답이 어긋나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초대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를 때, 덜덜 떨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람들의 표정을 읽으려고 하면 안 돼요. 우리끼리 즐겁게 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재미있게 진행해야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다고요.“
이말이 먹혔는지 진행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책은 어떻게 집필하게 되었는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주제는 무엇인지 등등.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오소영이 하트브레이크 호텔, 이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와서 부른 것이다. 리허설 때에도 부르지 않고 악보도 숨겨 놓았다가 짠, 하고 선물을 했다. 나중에 뒷풀이 자리에서 가사의 뜻을 설명해 줄 때, 가사가 얼마나 야한지 알 수 있었다. (가사 중 축축한 손이 포인트다)토크는 횡설수설(원래 그런거니까, 중간에 시나리오 김을 긴급 초대해서 말을 붙여야 할 정도였다.), 독자의 질문은 별로 없고(이것도 원래 이런 거니까), 행사는 언제 지났는지 휘리릭 한시간 반이 지나 버렸다. 전날 KBS 와 S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에도 과연 내가 내 책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 했는지 궁금했다.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한마디로 이야기와 주제를 설명하기 힘든 소설이기도 하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데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여덟 개의 이야기, 일곱 개의 도시, 주인공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다. 같은 건 오직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 뿐.

안주를 많이 시킨 긴 뒷풀이가 이어졌다. 돌양과 돌양의 아줌마 친구들(카톡 핵심 맴버), 오늘 출연해주신 가수와 토크 게스트들, 그리고 출판사에서 수고해주신 분들… 아마도 이런 멤버가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한 명씩, 또 한명씩 시간이 되어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돌양은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고, 핵심멤버(순수한 편집자, 시나리오 김, 방가방가)만 남아 조촐히 사케 술잔을 기울였다. 굉장히 추운 밤이었고, 따뜻한  따뜻한 우동을 먹었다.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당연히 넘었다. 전날엔 두시까지 마셨다. 횡설 수설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쩐지 센치해졌다. 탈고를 한 것보다 더 확실히 뭔가 끝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TUE 2011.12.13

신춘문예 예심을 또 하게 되었다. 여러 편의 단편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머리 아픈 일이기도, 설래는 일이기도 하다. 이후의 일정도 있지만 3초 정도 생각하고 하기로 했다. 똑같은 신문사의 똑같은 예심위원(소설은 나 포함 둘)이 예전보다 열댓편 더 많은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일단 보내 본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신문사에 보냈을 것이다. 신춘문예는 다른 나라에 없는(일제시대 때 신문사의 문예장려정책으로 생긴) 등단 제도다. 이게 된다고 작가 자격증 같은 걸 주지 않지만(나는 주민등록증 처럼, 직원증 처럼 작가 자격증을 주는 줄 알고 있었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 드물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한 번도 신춘문예에 응모해보지도 않았고, 그럴 마음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단편 소설을 잘 못쓴다는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예심을 봐달라는 가이드는 없다. 나는 되도록이면 나의 취향을 걷어내고 잘 쓴, 소설을 고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함께 심사를 본 모작가는 나보다 훨씬 선배작가로 신춘문예를 소설과 시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문학상도 받았다. 심사를 다하고 저녁을 함께 먹다가 폭탄발언을 들었다. “이제는 소설이 싫어서 쓰지 않겠다” 고 말한 것이다. 소설이 잘 안팔려서 그러는 이야기라면 웃으면서 넘어가겠지만 정말, 굳은 결심으로 한 이야기라 주변이 좀 썰렁해졌다. 이건, 절필선언이다. 심사 도중에 선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 간극이 크다면 도대체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는 취미활동? 어쩌면 선배는 마지막으로 내 놓은 소설, 그것도 아주 힘들게 쓴 소설이 반응이 시원찮아서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꿈이고 영광이지만, 프로 작가의 세계에서는 책 읽지 않는 사회에서의 책을 쓰는 사람이 느끼는 실망과 회환의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곳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투고를 하다니.

원고의 질은 지난번보다 좋았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취미반으로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정말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았다. 가슴찡한 소설도 있고, 무서운 것도 있고,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멋있는 그런 소설도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본심이 올리지는 못했지만 60대 아저씨가 쓴 로맨스 소설이다. 너무 뻔해서 다음 이야기가 예측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그 뻔한 유부남 유부녀의 러브스토리를 끝까지 읽는 나는 뭔가. 어렵고 복잡하고 심오한 소설이 나은지, 아니면 이런 뻔한 소설이 나은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선배의 말 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쓸 뿐이다. 어떤 분야에 이미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궂이 도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 나온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한 권 선배에게 건넸다. 책이 나온지 보름이 좀 넘은 나의 마음을 그는 충분히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 처럼 나이를 먹으면 “소설이 싫어졌어” 같은 말을(설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끔찍해서 하기도 싫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선배가 내일 아침, “다시 소설이 좋아졌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