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단상 21

21.
사람이 오래 살 수록 병들 확률이 높아지듯이, 차를 오래 몰면 사고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나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비록 포비를 두 달 정도 밖에 몰지 않았지만 첫 사고가 났다. 아주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로, 나는 어디가 긁혔는지 알 수도 없고, 정차해 있던 스타렉스의 모서리 부분이 포비의 파란색 페인트 자국이 났다. 방향등도 마찬가지. 그 차가 차선 밖으로 바퀴가 나오게 주차한 것도 잘못이지만 전적으로 마주오는 차를 살짝 피하려다 그 차를 살짝 스쳐지나간 것이 잘못이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지만 사진을 찍고, 보험사를 부르고, 보험으로 처리했다. 흐음, 이제는 사고날 확률이 줄어들었나? 그건 모른다. 단지, 사고가 났던 표선 해수욕장의 번잡한 거리를 갈 때마다 깨름직할 뿐이다.
22.
포비의 바퀴를 정지상태에서 돌릴때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자꾸 났다. 바퀴의 바람도 많이 빠진 것 같고. 지인에게 정비소를 추천받아서 갔더니 주인장 아저씨는 차가 정비소에 들어올 떄 내던 소리만으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아냈다. 자동차의 바람은 압력을 지정해 놓고 삑삑 정지 신호가 올때까지 내가 직접 넣었다.(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것보다 훨씬 쉽다.) 주인장 아저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해서 자신이 직접 정비를 하신다며 (약간) 힘들어 했다. 제주도의 이주 성공율이 2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며 은근히 겁을 주었다. 부산이 살기 더 좋을 텐데….라고 자꾸 말했다. 나도 요즘은 부산이 , 광안리가,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소한 차가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매연을 뿜으면서 다니는 차 속에서 사는 건…흐음,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 아무튼 바람도 넣고, 무슨 벨트도 바꾸어서 포비는 새 차같이 느낌이 좋아졌다. 물론 겉은 녹슬고 그대로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 정도 더 탈 수 있을까요?”
나는 마치 암에 걸린 환자의 보호자가 의사에게 말하는 것처럼 물었다.
“에이, 그건 제가 정확히 알 수 없지요. 관리만 잘 하면 계속 탈 수 있습니다. 부품만 있으면 말입니다.”
그런가. 포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23.
빅토르 형님(50대 중반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중이다)의 다마스도 찌그러졌다. 졸음운전을 하다가 가드레일을 박고 사고가 났단다. 천만다행으로 몸은 멀쩡하다. 그 다마스는 폭스바겐 캠핑카 스타일로 개조를 한 것이라(안에 부엌과 냉장고까지 있다) 형님이 무척 아끼던 차였는데 한 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사고가 나던 순간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생각은 그닥 나지 않고. 아! 젠장, 틀렸구나, 라는 체념이 들더라고.”
빅토르 형님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도 있으니 좀 더 조심하길 바란다.
24.
세화리 마을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대뜸 마을 주민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50대 중반의 아저씨인데 친환경 귤농사를 지으신다고 했다. 겨울에 기회되면 귤을 육지에 한 번 팔아보라고 하신다. 열심히 하면 글쓰는 것보다는 더 벌 거라면서. 하.하. 맞습니다.

제주단상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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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다스런, 약간 산마한 보건소 소장님이 말씀하시길 제주도 도민은 비만율 1위, 음주율 1위에다 운동부족 1위란다. 정확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납득되는 점이 있다. 대낮부터 막거리를 마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봤고, 동네에 걸어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기도 하다.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밭일을 하시느라 힘들어서겠지. 나도 시골생활에 적응했는지, 1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에 트럭을 타고 간다. 바람이 선선해지면 걸어다녀야겠다.

19.
동네 오름 동호회에 정식으록 가입했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어영 부영 가입하게 샘이다. 문고회에서 알게된 형님(알고보니 동장님)이 친히 전화를 주셔서 한 번 나가봤고(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오늘은 같은 회원인 동네삼촌이 회의 참석을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갔다. 보건소 소장님(여자분이다)이 회장이고 회원은 대부분 여자다. 한달에 한 두번 오름만 오르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동네에 있는 오름도 관리하고 일년에 한 두번 자원봉사도 한는 모임이다. 운동도 되고 봉사의 기회도 있을거라 여겨서 가입을 했다. 동데 사람들도 사실, 오름이나 올레길을 맘먹고 가기가 힘들다. 이런 모임이라도 참여해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일이리 찾아 나서기란 힘든가보다. 나도 슬쩍 끼어들어서 숨어있는 오름을 올라보려고 한다.
20.
저지리에는 문화예술마을이 있다. 우리동네와는 정 반대에 있는 곳으로 가끔 그곳에 있는 노리 갤러리에 가곤 한다. 오늘도 그곳에 새로운 전시 오프닝을 해서 가 보았다. 중간에 돈내코의 비밀의 계곡에 들러 수영도 했다. 돌양이 좋아하는 이명복 화가가 갤러리의 주인장인데 최근에 오스트리아에도 작업을 하러 다녀오셨다. 선생님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성품도 좋으시다. 세속에 찌들지 않은 스마트한 50대는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보기 힘들다. 동에서 서로 멀리 트럭을 몰고 가야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돌아올 떄엔 사모님이 싸준 떡과 과자도 잔뜩 받아왔다.

제주단상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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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임시로 살고 있는 집은 방이 하나라 지인이 놀러와도 재워줄 수가 없다. 돌양의 지인인 Y가 제주에 여행을 와서 근처에 들른다고 하기에 숙소를 알아봤다. 몇몇 게스트 하우스 중에 우리집 바로 옆에(진짜 걸어가면 5분 거리)에 탐라 스포텔이라는 곳이 있었다. 예전 초등학교를 개조한 것으로 오래전부터 올레꾼들의 저렴한 숙소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주로 전통놀이 교육장으로 단체 손님을 받고 있다. 메르스 여파 때문인지 혹은 원래 비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묵는 손님이 없었다. (한 팀이 있는 걸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고향으로 내려온 아들이었다). Y는 2인실에 홀로 묵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분의 성씨가 강씨인데 돌양과 같은 강씨, 게다가 본적도 같았다. 조금 먼 친척뻘이라 무척 반가워했다. 이렇게 큰 학교를 자신만의 세상으로 꾸며 놓고 개 세 마리와, 토종닭 한 마리(닭 잡기 대회에서 탈출했다), 여러 가지 허브와 화초, 텃밭을 가꾸고 계셨다. 아침 식사도 한 번 같이 하고(당연히 텃밭에서 나는 것들로 가득찬), 날씨가 좋지 않는데도 낚시도 하러 갔다. Y는 원래 하루 정도 묶고 서쪽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사흘이나 묶고 서귀포로 떠났다. 메르스 때문에 단체로 예약이 취소되어 한가하다는 강사장님과 학교 앞 평상에서 하귤을 몇 개나 까먹었다. 텅 빈 운동장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15.
제주도에 메르스 여파가 미치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들어온다고 해도 자가격리가 쉬울 것이다. 제주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차피 자가격리 상태로 지내기 때문이다.(다들 밭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는 뜻이다.)

16.
불을 때는 것은 재밌다. 처음엔 숯을 샀지만 이제는 주변에 있는 나무, 종이를 태운다.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소를 적절할 때 공급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잘 타는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의 구별법도 알게 된다. 가장 좋은 불은 나무가 타고 버얼건 열기를 머금은 숯이다. 그 위에는 무엇이든 구워도 맛있다. 우리는 그 불에 곰국을 끓였다. 아주 많이 끓여서 한 그릇은 혼자사는 뒷집 할아버지에게, 또 한그릇은 스포텔 내외에게 드렸다. 남은 것도 아주 많아서 냉동실에 채워 두었다. 뒷집 할아버지는 답례로 직접 재배한 쌈야채를 가져오셨다. 여러 가지 종류에다가 맛도 굉장했다.
“나 혼자 다 먹을 수 없으니까 언제든지 와서 캐먹어.”
라고 말씀하셨지만 진짜로 우리가 매일 가서 캐먹으면 싫어하시겠지? 후훗.

17.
문고회의 월별 모임에 여차저차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마을문고를 요즘 가장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나다. 지난 번에 마을문고 회장님을 만났는데 오늘 모임에도 초대를 받았다. 총 여덟분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50퍼센트 밖에 알아듣지 못하고 허허, 웃기만 했다. 한 분은 전직 이장님, 또 한 분은 현직 이장님이셨다.(즉, 잘 보여야 된다는 말이다) 자리에서 가장 젊은 분이 나보다 딱 열 살이 많다. 그 분은 형님으로, 나머지는 삼촌으로 모시기로 했다. 모이자 마자 읍내의 식당으로 몰려가 밥을 먹었다. 소맥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안주로는 아나고 김치탕을 먹었다. 부산에서는 아나고를 회로 먹지 탕으로 먹지 않는다.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자네, 술을 잘 마시나?” 아니요. “축구나 운동을 잘하나?” 아니요. “악기는 잘 다루나?” 피아노는 조금.(이 부분에서 무시당했다. 색스폰 정도는 불어야 악기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시골이 도시보다 취미생활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다들 소모임 같은데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어찌 되었던 나는, 제주로 내려온 사정이 딱한 작가 정도로 인식된 것 같다. 다행이다.
“심심하면 한 번 불러. 술먹게. 그게 시골에서는 필요하니까.”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네, 라고 말했지만 정말 심심할 때 전화를 해서 술을 마셔도 되는지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앞집 아저씨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나 저제나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약간 긴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