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정도의 사고는 아니지만

오래된 트럭으로 완만한 경사길을 달리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았다. 이건, 무슨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 아니었나? 기어를 바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면 될 건데 막상 그 상황에서는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인 어쩌면 저 앞의 돌담에 부딪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 본능적으로 죽기 싫었지만 은근히 기대도 되는 상황. 길도 좁고 90도 좌회전, 게다가 왼쪽 끝에는 자동차가 하나 대어져 있었다. 결국 그 자동차를 살짝 스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 차를 멈췄다. 하필이면 외제차였고 보험처리를 했지만 수리비가 꽤 나왔다. 견인을 해서 알아보니 제너레이터가 고장이란다. 브레이크 계통이 아니라 생뚱맞았다.

일주일이 넘게 시무룩해 있었다. 보험사에서 전화가 오는 것도 귀찮고, 사고당사자의 처리도 좀 이상했다. 제일 이상한 건, 사고 상황을 계속 떠올려 보는 것. 자꾸 생각할 수록 아무런 사고 없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못했다는 것. 거기엔 자책도 있고 체념도 있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은 아무런 위로가 안된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자동차 사고영상 모음이 많다. 블랙박스가 일반화되어서 누구나 사고상황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나 보다.(물론 나는 없지만), 다들 나보다 더 죽을 뻔한 상황을 당한 장면이 수십개 연결해서 나온다.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신호를 지켰더라면, 피할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이 많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울한 것이다. 어차피 고물 트럭은 운전하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더욱 운전하고 싶지 않아졌다.

트라우마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고 후에는 정신적 상처가 남는다는 말, 이런 작은 사고에도 느낄 수 있으니까 남의 일을 쉽게 이야기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복하라고,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이다. 뭔가 인생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고작 미미한 사고 떄문은 아니고, 작년 아버지의 일, 올해 누나의 병 등등을 통해 미묘하지만 큰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사람은 어차피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는데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 나는 하루 하루를 균형있게, 조용하게 보내는데 애써왔는데 그것도 별 의미 없어 보여서 착찹했던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음악을 다시 만들고  애쓰지 않는 소설을 써야 할 것 같다.

미역과 계란한 판

표선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스피커 방송이 들렸다. 지역 농산품 판매 장려를 위해서 주민들에게 미역과 계란 한 판을 증정하니 은행 앞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한 번 나가봤다. 후드티를 덮어쓴 여자,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할머니 몇 분 밖에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라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모여야 하지 않는가? 의심은 들었을 때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역 농산물 판매점과 전화번호를 정리해 놓은 프린트를 나눠주고 잠시 사은품을 운송하는 차를 옮기겠다면 근처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줄을 섰던 열 댓명의 사람들은 차를 따라 한줄로 줄줄 따라갔다. 트럭은 가운데에서 문이 열리는 형태로 주변엔 검은 장막이 쳐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아저씨가 비닐 봉지를 하나씩 나눠주더니, 그곳에 다섯 가지 사은품을 나눠줄거라고 했다. 나는 미역과 계란 한 판이면 충분한데.

말투가 이상했다. 약장사라고 하면 딱 좋을, 수백번, 수천번을 똑같은 말을 했을 법한 시장통에서 들을법한 말투. 그걸 알아차렸을 때에 나왔어도 됬다. 나는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지역 농산물을 잘 이용해달라는 말과 함께 일단 미역 한 봉지를 주었다. 커다란 미역이 아니라 조그만 60그램 짜리(시가 천원쯤 되려나?) 미역이었다. 유통기한은1년이지만 제조일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 다음, 옥 성분이 들어간(하지만 전혀 믿을 수 없는) 밥주걱을 하나씩 주었다.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비닐봉지를 열고 구걸하는 듯한, 딱히 기분은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구찌뽕으로 만든, 무좀에 특효약이라는 비누를 설명하면서 왜 자꾸 그곳의 번호로 구찌뽕을 주문하라고 강조하는 걸까? 딱 2분간의 홍보 동영상을 상영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트럭을 빠져나왔다. 비닐 봉지에 미역과 밥주걱을 담아서.

피같은 30분을 잡아 먹었고 부끄러움과 함께 두 가지 공짜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끝까지 서 있었으면, 홍보동영상도 다 봤으면 계란 한 판을 받을 수 있었을까? 트럭 안에 밀가루 박스는 봤어도 계란 박스는 보지 못했다. 아니다, 그 중 한 두사람에게 줬을 수도, 혹은 서너개씩 나눠 줬을 수도 있다. 그게 아직도 궁금하다.

 

하와이 15일째

힐로를 떠났다. 여전히 푸르고, 조금 오래되었고, 정겨운 동네지만 적당히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 뿐 아쉬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연환경으로는 완벽하지만 살기에는 약간 부족한 동네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도시를 하나쯤 알고 있는 건 좋지 않나 싶다. 기회가 생기면 망설임없이 도망갈 수 있을 테니까.

오아후 섬에 도착하니 렌터카 회사에서부터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도시에 온 걸 실감했다. 빅아일랜드 보다 훨씬 작은 차를 타고 할레이와로 향했다. 날씨는 좋았고, 공룡 능선의 산들이 멀리 보였고 고속도로가 있었고, 생뚱맞게 솟아오른 타워 아파트도 보였다. 그걸 휙휙 지나치면 서퍼들의 고향, 할레이와에 다다른다. 체크인 하기 전에 해산물이 들어간 스프같은 것을 먹었다. 이틀 동안 머물 집은 메인 도로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작은 오두막(이라고 하기엔 좀 큰)이었다. 깨끗하게 리모델링 되었는데 집이 살짝 기운 건 어쩔 수 없었다.(마치 제주도의 오두막처럼).

샤크 코브에 가봤지만 파도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고 바로 옆에 있는 아이들이 노는 풀에 들어갔다. 뾰족한 바위가 있어서 살짝 위험했지만 팔뚝보다 약간 작은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좀 심심해서 터틀베이 리조트까지 가 보았다. 북쪽에서 가장 큰 리조트고,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안전한 비치가 하나 있어서 수영을 조금 했다. 앞쪽의 바다는 굉장히 와일드해서 ‘나를 삼킬듯한’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파도가 치고 있었다. 해도 적당히 지고 있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런 풍경은 사진에 절대로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도르는 온통 부서진 파도 때문에 생긴 안개로 가득차 있었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과 간단히(라고 하기엔 좀 많은 코코넛 새우, 갈비, 버섯볶음) 안주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