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쿨하고 가슴 저린 청춘일기

이렇게 쿨하고 가슴 저린 청춘일기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

김한길씨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이제 소설을 써주셨으면 한다. 내가 가장 감명 받았던 우리나라의 소설은 김홍신의 ‘인간시장’과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인데 이상하게 두 분 다 정치로 발걸음을 돌리셨고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대통령의 딸과의 로맨스라는 화끈한 이야기인 여자의 남자는 1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 셀러였다. 김혜수 주연의 드라마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책 속의 야한 씬이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그에 반해 에세이 집 ‘눈뜨면 없어라’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못한 듯하다. 초록색 바탕의 붉은 제목이 전부인 자그마한 하드커버 초판을 나는 아직도 갖고 있다.(1993년에 나왔고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나 모두 품절) 김한길을 정치인이나 최명길의 남편 정도로 알고 있다면 이 책으로 그에 대한 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김한길이 첫 결혼 직후,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면서 쓴 일기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경위, 그리고 미국에서의 고달픈 생활, 그리고 성공과 실패까지 짧막한 일기로 담담하게 엮어 나간다. 흑인들이 위협하는 주유소에서 밤을 지키고, 햄버거 헬퍼로 일을 하고, 졸린 눈으로 학교를 다니는 면서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발버둥 친다. 힘든 일을 하면서 그가 목격한 것은 삶에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지쳐버린 사람들이다. 한 편 한 편 짧막한 일기가 가슴을 툭, 툭 건드린다. 이것은 김한길의 미국 생활 성공기 같은 것도 아니고, 신혼 일기도 아니다. 5년 동안 부부 중 누군가 한명은 잠을 자지 않고 일했던 그 시간에 대한 덤덤한 회고록이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댓가’로 김한길은 신문사 지사장으로, 아내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씁쓸한 기록인 것이다.

이 책이 어떤 소설보다 진정성을 얻는 것은 일기이기 때문이지만 에세이와 소설 그 어느 것도 아닌 독특한 스타일이 전체를 아우른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그 어떤 최루성 연애 소설보다 더 슬프고, 때로는 어떤 유머집보다 웃기다.
그래서 나는 김한길씨가 다시 소설을 썼으며 한다. 흰 머리 때문에 나이가 많아 보여도 그는 쿨하고 가슴저린 ‘젊은’ 소설을 우리에게 한 권 선물해 줄 것만 같다.

// 아레나 2009.4

가쿠타 미츠요 “대안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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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대안의 그녀” 가쿠타 미츠요 지음집단 따돌림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개성이 존중받지 않는 사회일수록 남들과 비슷하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도, 공원에서도 따돌림 받는다. 132회 나오키상 수상작품인 가쿠타 미츠요의 대안의 그녀는 그런 집단 따돌림과 편견을 극복해가는 두 주인공 아오이(여고생), 사요코(주부)의 이야기를 교차편집해가면서 보여준다.

아오이는 따돌림을 당해 학교를 옮겨와 간신히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아오이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나나코와 친해진다. 나나코와 학교에서 만나면 다른 아이들 눈에 띌까봐 방과 후에만 단짝처럼 지내게 되는데, 여름방학 해변가의 팬션으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뒤 충동적으로 가출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러브호텔과 디스코텍 등등을 전전하며 의미 없는 생활을 하다가 둘은 결국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한편 주부인 사요코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보내다가 의욕적으로 자신만의 일을 찾아 나선다. 운 좋게 일하게 된 곳은 아오이(이제는 사요코와 나이가 같은)가 사장으로 있는 여행사. 아오이는 청소업을 새로 시작하게 되고 사요코는 그것이 비록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동료직원들은 결국 아오이의 등을 집단적으로 돌리게 되고 어떤 일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요코도 결국 사요코를 믿고 의지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친구라는 것은 뭘까? 화장실에 늘 함께 가주던 단짝 친구가 사소한 말실수로 영영 자신을 따돌리게 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자던 맹세가 몇 년을 지나보니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 것 뿐일까. 소설 속에서 동반 자살했던 그들은 살아나게 되고 나나코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지만, 결국 그들이 그토록 맹세했던 같은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라는 존재는 중요하지만 결국,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는 자신만의 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사요코가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오이는 나나코와의 충격적이었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고, 사요코는 아오이와의 일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코끝이 찡할 정도로 아련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되 절망적이지는 않다. 사요코는 망해버린 아오이의 회사를 찾아가 다시, 무엇이든지 일을 시작하겠다고 청소를 시작하면서 소설을 끝을 맺으니까 말이다.

<국제신문 청탁원고>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 Jonathan Safran F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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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의 책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두 번째 책을 낸 1977년생 작가인데다가, 첫 번 째 책이었던 Everything is illuminated 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책이 비평이나 판매에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새로운 책인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극도로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도 911 테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결코 두 책이 역사적 비극을 무겁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소재를 다룬 소설을 웃어재끼며 읽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을 포는 가지고 있어요. 그 웃음 뒤에는 사람의 깊은 감정을 쓸어내리는 휴머니티도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주인공 오스카는 아빠를 911 테러로 잃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고 직전에 전화로 메시지를 남기지만 오스카는 그 전화를 받을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 괴짜에다가 호기심 많은 오스카는 아빠가 남긴 열쇠와 “Black”이라고 씌여진 봉투를 단서로 뉴욕 곳곳의 Mr.Black, Mrs. Black을 만나러 다닙니다. 그 열쇠가 무엇을 열수 있는지, 그리고 Black씨가 아빠를 알고 있는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탐사합니다. 이정도의 이야기라면 호밀밭의 파수꾼의 2005년 버전이라고 읽으면 유쾌합니다만 이 책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오스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편지형식으로 중간 중간에 끼어듭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민을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불행하게 서로 같이 살게 되었는지, 왜 할아버지가 아들을 보기도 전에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편지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 열쇠가 아빠의 중요한 단서가 되지는 못합니다만 열쇠를 찾으러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외로움과 인생의 공허함, 그러나 마지막 남은 희망등을 이야기 합니다. 결코 교훈적이고 따분하지 않아요. 어느날 느닷없이 열쇠를 들고 방문한 12살짜리 꼬마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결국 이야기는 911에 머물지 않고, 사고로 잃어버린 아빠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을 소재로한 보편적인 정서를 다각도로 유쾌하게 엮어나가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ps1. Everything is Illuminated 는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엘리야 우드가 주연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책이 번역될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