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이런 말을 하면 위선적으로 들리겠지만,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 오랫동안 공부했고 책도 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소설에 대해 공부해 본적도 없고, 책을 내기 전에도 소설은 쉽게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취미로서 소설을 쓰는 것은 더욱 쉽다. 어디에 투고한다든가 책을 내야한다든가 하는 욕망이 없다면 말이다. 한 페이지 단편소설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10년이나 운영해왔으니 내 말을 믿어 봐도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한 권짜리 장편소설을 쓸 수 없으니 한 페이지짜리 단편소설부터 시작해보자.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A4 프린트 용지 단 한 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장이다. 여기에 무언가를 채워 넣어서 소설을 써보라고 하면 처음엔 쉬워보여도 막상 생각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1인칭으로 써야 할까, 3인칭으로 써야 할까, 발단 전개 절정 결말 구조로 써야 하나, 대화와 묘사는 어떻게 하지…. 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뭔가 배워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은 나쁘지 않다. 창작의 영역에서도 기본적인 기술은 중요하다. 맞춤법을 모르고 글을 쓸 수 없고, 기본 데생 실력없이 그림을 그릴 수 없고, 화성학이나 악기를 다루지 못하고 작곡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배움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각종 자격증이 난무한다. 토익 토플 점수는 기본이고, 한문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있다. 예전에는 손글씨 쓰기 자격증도 있었다.(지금도 있는 지도 모른다) 자기 계발서,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좋은 부모 되는 법에 대한 책도 잘 팔린다.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공포의 기운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은 열정 때문에 무언가를 배워본 적이 언제였던가?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서는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더 배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특히,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데는 배움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수많은 문창과, 미술과, 음악과 학생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고 나와 모두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책만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듯이. 진정한 공부는 혼자 깨우치는 것이다. 토익 점수가 높다고 외국 사람을 만났을 때 영어가 술술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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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는 비어있는 A4 종이 한 장이 놓여있다. 그리고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연필과 지우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한 시간이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질릴 정도로 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시간이 나면, 책을 좀 읽고 나서, 혹은 다음 기회에 해 볼거라고 다짐했지만 지금 당장, 당신은 소설을 써야 한다. 배운 게 없다고 말하지 말 것. 당신은 수업시간에 충분히 문학에 대해서 배웠고, 충분히 읽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충분히 써보지 않았다는 것일 뿐. 한 페이지에 무언가를 완성하겠느냐고 의심하겠지만 나는, 999편의 한 페이지 단편소설 당선작을 선정한 경험이 있다. 사람들은 제한된 분량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희한한 소설, 감동적인 소설, 무서운 소설….별의 별 것을 다 써낸다. 전공자도 있고 이미 작가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소설 쓰기가 취미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당신도 쓸 수 있다.
이제, 연필을 쥐고 쓰기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하고 싶어했지만 하지 못한 그 모든 일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 시작할 것. 좀 더 긴 소설은 이번 것을 마친 다음에 시도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