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2년 전, 부산에서 제주에 내려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자그마한 땅을 샀기 때문이다. 우리도 남들처럼 작은 시골집을 사서 고쳐볼까 생각했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아서 땅을 산 것이다. 그것도 마을과 마을 사이의 외딴 숲을. 소개시켜준 아저씨 말에 따르면 노루도 잠시 쉬고 갈 정도로 아늑한 땅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집을 짓기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우리야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살고 싶었으니 바로 다음 날 계약을 했다.

일단 집을 빌려 살면서 차근차근 집을 짓기로 했는데 빌린 집을 고치면서 살다 보니 딱히 큰돈을 들여 새집을 지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 땅을 놀려놓기도 뭣해서 무언가를 심어보기로 했다. 텃밭을 하려고 흙을 부어놓은 공간이 있어서 작년에 옥수수와 토마토, 루콜라를 심어 보았다. 결과는 대실패. 제대로 비료 주기를 하나, 농약을 치기라도 하나. 한두 달씩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니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 리가 없었다. 옥수수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밖에 안 되고, 루콜라는 벌레가 잎을 다 먹어버렸다. 그나마 토마토가 몇 개 열려 있어 먹어보긴 했다. 딱히 맛은 없었지만.

이후로 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올봄부터 아내는 아침에 매일 땅으로 출근한다. 다시 밭을 일구는 건 아니고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고른다고 했다. 그런 건 포크레인으로 한 방에 하는 게 낫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침에 한 시간씩 땀을 흘려가며 혼자 일을 하는 게 좋다나. 새소리도 듣고, 흙냄새도 맡으면서 말이다. 나는 그 시간에 글을 써야 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땅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함께 땅에 가보자고 졸라서 갔다니 주변에 온통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곧 산딸기가 열릴 거라고 했다. 작년에 주변에서 산딸기를 딴 적이 있었다. 그 씨가 이곳까지 흘러왔는데 아내는 조심스럽게 산딸기만 빼고 다른 잡초를 뽑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딸기밭이 된 것이다. 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뿌리지 않고, 물도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윽고 고사리 철이 되었기 때문에 잠시 잊어버리고 열심히 고사리를 따러 다녔다. 작년에 처음으로 고사리를 캔 후로 나만이 알고 있는 몇몇 장소가 생겼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지 않아도, 동네 할망들만이 아는 곳으로 가서 한두 번 캐오면 끝이다.

고사리 철이 끝나자 마침내 딸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입안에 넣으니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났다. 넝쿨에 가시가 있어서 조심조심, 혹시나 바닥에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땄다. 이걸로 무얼 할까? 잼을 만들어봤자 잘 안 먹을 것 같아서 술을 담그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니 당분간은 매일 아침, 산딸기를 따러 땅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사람은 주는 게 하나도 없는데,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물해주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것이다.

슬로 쿡으로 만든 목살찜

요리를 하다 보면 조리하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양파를 천천히 가열하면 단맛이 강해진다든가, 부침개는 처음에 센 불에 구워야 딱딱하지 않게 된다는 것 등. 단순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화학적, 생물학적 이유가 들어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맛있는 게 아니라, 분명히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쳐 주었으면 무척 유용했을 텐데 어쩐지 쓸데없는 것만 배운 것 같다.

제주에 살다 보니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된다. 돼지고기를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별로 맛이 없는데 그 이유는 온도 때문일 것이다. 직화구이, 그것도 향 좋은 숯불에 구워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직화구이는 몸에 나쁘다지만, 맛의 유혹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바비큐를 하다 보면 몸에서 불 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

얼마 전,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두툼한 돼지고기 목살이 남아 있었다. 밭을 지나다 뽑아놓은 무도 있고. 구워먹기는 싫고, 어떻게 요리를 할까 고심하다가 전기 밥솥의 슬로 쿡 기능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친구가 딱 한 번 요리를 해 준 적이 있는데 슬로 쿠커를 이용한 삼겹살찜이었다. 별 것은 없고 두툼한 삼겹살에 각종 양념을 한 뒤 10시간 정도를 잊고 나면 ‘짜잔’ 하고 요리가 되는 것이다. 형태는 흐물흐물해지지만 맛은 좋았다. 나는 일단 무를 썰어 바닥에 깔고 두꺼운 목살을 얹은 다음 생강과 마늘을 갈아 넣었다. 간장과 후추, 대추, 미림 등으로 양념을 하고 기다렸다. 워낙 성격이 급한 탓에 시시때때로 뚜껑을 열어 잘 익고 있는지, 혹은 양념이 타지는 않는지 살폈다. 자주 뚜껑을 열면 맛있게 요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으니까.

오랜 기다림 끝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맨 위에 기름이 둥둥 떠 있고 아래쪽에 있던 무에는 양념이 잘 배 있었다. 고기는 무척 부드럽고 양념은 달착지근해서 좋았다. 살에 붙어 있는 비계마저도 쫀득쫀득하게 변해 별미가 되었다.

아내도 무척 좋아하기에 이참에 슬로우 쿠커를 구입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전기밥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도기로 되어 있어 열전달률이 높고 뚜껑이 투명한 유리라 열어보지 않아도 된다. 채소 같은 것을 물 없이 조리하면 삼투압 작용으로 영양소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아 영양소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고기를 쪄먹으면 불에 구워 먹는 것보다 몸에 훨씬 좋다. 하지만 설득은 실패. 조리기구를 사다 놓고 몇 번 이용한 후에 쓰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예측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빵기라던가 녹즙기 같은 것이 창고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어쩔 수 없다. 전기밥솥의 슬로 쿡 기능을 이용해 몇 번 더 요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연기자 네 명이 발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프로그렘을 만든 나영석 프로듀서는 이전에도 ‘삼시세끼’나 ‘꽃보다 할배’ 등 톡톡 튀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번엔 여행과 식당 운영이라는 요소를 흥미롭게 잘 섞었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섬에 가서, 한가롭게 한국 음식이나 만들어 팔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올 봄에 태국의 외딴 섬에 갔는데, 김치 볶음밥이나 불고기, 라면, 김밥을 팔면 참 잘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식당의 메뉴는 세 가지. 한국을 떠나기 전 셰프에게서 배운 불고기 라이스, 불고기 누들, 불고기 샌드위치다. 과일 쥬스와 레모네이드 등의 음료도 판다. 처음엔 장사가 시원찮지만 점점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고 입소문도 나게 된다. 장사를 하루 밖에 하지 못했는데 가게가 헐리게 되어 새로운 곳에 가게를 차리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다들 힘을 내서 새 가게를 열고, 할아버지 연기자가 아르바이트생으로 투입되어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진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결국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힘든 가운데 음식점이 성공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음식점 차리고 싶은 사람들의 로망을 충족시키고, 힘들게 일하면서 발생하는 재미난 에피소드로 웃음도 주면서 말이다.

웃으면서 TV를 보지만, 전원을 끄면 살벌한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요식업은 폐업률이 90%를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주변에 수많은 식당 간판이 몇 달 사이에 휘리릭 바뀌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한다면 끝짱나게 맛있는 걸 만들어 팔 수 있을 텐데 왜 그리 쉽게 망하는 걸까? 욕설도, 실력도 출중한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가 출연하는 리얼 다큐 ‘키친 나이트메어’를 보면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망하기 직전인 식당을 찾아가 고든 램지가 메뉴는 물론, 인테리어, 경영 등을 바꿔 성공적인 식당으로 탈바꿈시켜준다.

키친 나이트메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식당 내부 인간관계의 대립이 악몽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가족과 함께 일하기 마련이고 가족드라마가 식당 운영까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식당 경영자는 주방장과 권력 관계에 놓여있고, 웨이트리스와 보조 요리사도 보이지 않는 알력싸움을 하고 있다. 고든 램지는 화끈한 성격과 따뜻한 인간성으로 그들을 화해시키고, 빚더미에 앉은 식당을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킨다.

‘윤식당’은 가상의 식당이라는 콘셉트답게 비현실적인 프로그램이고, ‘키친 나이트메어’는 실재하는 식당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프로그램이지만 둘 다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지만 그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다.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 메뉴를 바꿔주고, 인테리어를 바꿔주고, 식당 경영 문제를 바꿔주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