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아노가 도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망. 저렴한 가격에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걸 알고 있다. 가벼움과 편의성에 중점을 둔 피아노라 터치와 음색은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구입한 88건반이라 연주나 작곡에 새로운 음역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겼다. 아직 이걸 들고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으니 새로운 가능성은 조금 더 지켜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녹턴의 25번 마디에서 막혔다. 앞의 두 부분에서 반복되는 멜로디인데 다른 부분이 그렇듯 이것도 살짝 변형된 박자로 스르르 내려온다. 들을 때는 약간 재미있네, 하는 부분인데 실재로 쳐보면 자연스러운 진행과는 어긋나는 엇박자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리려면 굉장히 어렵다. 특히 왼손은 정박으로 쿵짝짝 치고 오른손은 잇단음표로 치기 때문에 왼손과 오른손이 완전히 따로 놀아야 하는 것이다. 이걸 컴퓨터로 입력을 해 봤는데도 뭔가 어색하다. 잘 연습이 안 되면 다른 파트로 넘어가면서 이걸 따로 연습해야 할 것이다. 알토산 카페에서 새롭게 햄버거 메뉴를 개발했다기에 시식을 하러 갔다. 카페가 커다란 창고를 개조해서 각종 음향장비와 조명을 설치해두었다. 거기에 고장 난 피아노가 하나 있는데 당연히 연습하던 곡을 쳐봤다. 피아노가 너무 소리가 나가서 차라리 오늘 구입한 전자 피아노 소리가 훨씬 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어쿠스틱 피아노는 때리는 맛이 있다. 나무로, 쇠줄을 탁, 때리는 타건감. 쓰레기 같은 피아노에도 그런 느낌은 살아 있다.

소설은 4장, 현지의 시점에서 나가는 부분인데 뭔가 탁, 들어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사건을 만들어내서 들어갈 건데 앞부분을 조금씩 들여다 보면서 뒷부분의 많은 가능성을 조율해보았다. 아니, 소설에서는 전체적으로 조율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점에서는 조율보다는 방향성만 갖고 대범하고 생각지도 못한 진행, 주인공의 내부에서 뚫어져 나오는 그런 진행이 필요하다. 아닌가? 그건 사람의 성격대로 가는 건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실이익을 따지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대범한 진행 자체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생과 소설은 과연 어느 정도 비슷할까? 남자 아이의 시점보다 여자아이의 시점이 조금 어렵다. 실은 여자 아이의 시점에서 먼저 시작한 이야기라 쉬울 줄 알았는데 방향이 아직은 잘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피아노가 들어간다. 자연스러운 건지, 억지스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다듬고 지켜볼 수 밖에. 인생을 풀어내기엔 너무 모자란 페이지에 쓸데 없는 이야기를 집어넣을 틈은 없다. 현지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것, 그것에 대한 걸 써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전자 피아노를 주문했다

안다. 우리 집에 충분히 많은 전자 키보드가 있다는 거. 하지만 고작 세 개 뿐이다. 그나마 피아노 대용의 역할을 하는 건 제주도로 이주해서 산 Roland RD64 하나 뿐이다. 새로 주문한 건 88건반에 휴대성을 겸비한, 7킬로 밖에 안하는, 건전지로 구동되고 블루투스로 아이패드 연동이 가능한 저렴한 전자 키보드 Roland Go Piano 88 이다. 이럴 바엔 진짜 피아노를 사는 게 낫지 않은가 싶지만 내가 하고 싶은건 일종의 퍼포먼스다. 숲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정확한 스킬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장소에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중요하다. 남을 위해서 연주하는 게 아니다. 나를 위해서 연주하는 것이다.

최근에 쇼팽의 녹턴 9번을 연습하고 있다. 한 3주 정도 되었나? 쉽게 편곡한 버젼이라 일 주일이면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E장조를 C장조로 편곡하고 멜로디도 단순화 시켰기 때문에 전공자가 보면 한 번에 보고 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클래식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쇼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다. 운명처럼 쇼팽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지난 6월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들렀는데 (공항 이름도 쇼팽공항이다), 하루는 시간이 남아서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쇼팽 박물관에 들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물관하고는 달리 꽤나 현대적인 시설로 쇼팽의 생애와 음악을 정리해 둔 곳이었다. 특히 그가 작곡한 수많은 피아노 곡들을 장르별로 분류해서 감상할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컴퓨터로 곡 스타일에 대한 설명를 볼 수 있고 헤드폰으로 전곡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 중 에튀드와 녹턴 부스에서 몇 곡을 들었다. 발라드와 마주르카에서 멈췄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겠지. 녹턴 부스에서 몇 곡을 듣다가 딱 멈춰버린 곡이 바로 9 번이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익히 들어본 곡이었다. 마흔 중반이 되어서 들어보니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설명하기 힘든 만큼 복잡하고, 섬세하고,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연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에서 연습하는 피아노 레파토리는 한 두해 동안 변한 게 없다. 인생의 회전목마를 한 번 치고(꼭 쳐야 한다), 그 다음엔 내가 연습하고 싶은 곡을 친다. 최근에는 강아솔의 ‘나의 대답’ 반주를 연습했다. 반주도 하나의 연주곡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아름다운 편곡이다. 뒷부분이 약간 어려운 감이 있지만 연주를 거의 완성했다. 그 다음으로 연습하고 싶은 곡이 없었다. 쇼팽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악보를 사서 출력한 후, 처음 했던 건 곡의 화성 분석. 물론 이런 걸 몰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칠 수 있지만, 화성 위주로 피아노 반주를 연습한 탓에 그게 되어 있지 않으면 악보를 이해할 수가 없고, 외우기도 힘들다. 클래식도 살펴보면 일정 화성의 진행을 따른다. 팝 음악의 증조 할아버지 쯤 되니 조금 진행이 복잡하고 다르긴 해도.

쇼팽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쇼팽의 음악을 연주해보는 것이다. (지나치게)감성적이고 쉬운 멜로디지만 화성의 진행은 약간 복잡하고 절묘하다. 반복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화한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허를 찌른다. 쇼팽은 천재인 것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일년이 넘게, 쉰 살이 넘는 나이에 하루에 삼십분씩 연습해서 연주를 해낸 사람이 있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의 편집장인 앨러 러스브리저인데 그가 쓴 ‘다시 피아노(Play it Again)’을 읽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 거리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왜 하필이면 쇼팽인가? 왜 발라드 1번인가? 그에게도 사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뒤늦은 나이에 선생을 몇 번 갈아치우고, 패라리 대신 그랜드 피아노를 사고, 피아노가 들어갈 집까지 짓는 이 남자의 무용담은 나를 자극 시키기에 충분했다. 피아니스트도 꺼린다는 발라드 1번에 도전하는 50대 아저씨도 있는데 녹턴 쯤이야. 내가 그처럼 전통적인 피아노 스킬을 배우고 싶은 건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도 책에서 말했지만 진정 연주해보고 싶은 어떤 곡을 제대로 연주해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는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다지고, 누구눈 술을 마시고, 또 누구는 산을 타고 자전거를 타지만 어떤 남자는 피아노를 친다. 중년이 지나고 뭔가에 절실히 매달리는 것, 늙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은 열망에 빠지는 것이다.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젊은 음악가들은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연주를 망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런데 사실 에너지는 곡 안에 이미 들어 있거든요. 필요한 건 에너지와의 연결점을 찾는 건데 말이죠. 곡에 내재한 긴장감과 연결점을 찾아내면 그 긴장의 방출은 자연스레 찾아오는 법입니다.

앨런 러스브리저 “다시, 피아노” 중에서.

남자들의 황혼

두 번째 기타학원에 등록한 이유는, 집하고 학원이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지만 ‘석 달에 10만원’ 이라는 파격적인 수업료 때문이었다.
짜장면집 지하에 (처음으로 기타를 배웠던 곳도 지하에 있었다) 섹스폰을 연습하는 서너 개의 부스가 있고 한 가운데에는 드럼 세트도 있었다. 학원이라기보다는 연습실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원장의 인상은 조금, 이상했다.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카락이 굉장히 짧고, 얼굴은 언제나 부어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썼고, 구라가 셌다.

지금은 배나온 40대 후반이지만 전직 유도선수였고, 예전에 대구에서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고 했다. 뒤늦게 암흑의 세계에서 그를 구원한 건 아내다. 어떤 연유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부산에까지 내려와 음악학원을 차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들은 두 딸과 함께 학원이 있는 건물 3층에 살고 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오시오 코타로의 ‘황혼’ 이라는 기타 연주곡이었다. 핑거스타일의 연주곡으로 멜로디와 아르페지오 화음을 같이 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성하가 핑거스타일 기타연주로 유튜브 스타가 되기도 했다. 기타로 반주를 치면서 노래를 하기 보다는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황혼이라는 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해질녘의 쓸쓸함을 느낄 것이다. 그걸 온 몸으로 느끼면서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타 선생님은 인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나보다 열 살 정도가 어렸다. 나는 그를 ‘기타 샘’ 이라고 불렀다. 내가 보기에 기타실력은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주말이면 가끔씩 연습실에서 합주도 한다고 했다. 드럼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같은 그룹 멤버다.

그는 수업 첫 시간 나에게 기타줄을 제대로 잡는 방법, 제대로 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몇 년 동안 기타를 배웠지만 기본적인 자세를 그토록 정성스럽게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한 음, 한 음 정확한 울림으로, 올바른 자세로 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십분 씩이라도 손가락 운지를 연습해야 한다.
“혹시 밥만 먹고 기타만 친 적 없어요?”
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사실은 군악대에 있었거든요. 정말 밥만 먹고 하루 종일 악기를 연주했어요. 그 때엔 기타 말고 드럼이나 베이스도 번갈아 가면서 쳤지요.”
그렇구나. 다, 그런 미친 시절이 있어야 잘하는 구나.

나는 과연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확실한 기술이 있을까? 소설을 쓰는 것은 과연 기술일까?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쓸모가 있는 것일까? 고질병처럼 도진 취미생활이 아닐까? 혹시 기타 샘은 음반 하나 내지 못하고 평생 레슨이나 하면서 살 지 않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음악학원을 차리는 게 아닐까? 실패한 예술가는 예술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을 가르친다던데. 나도 결국엔 논술과외 선생이나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레슨을 마치고 원장, 기타샘, 섹스폰을 배우는 아저씨 두 명, 드런 샘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학원 바로 맞은편에 우포식당이라는 곳에서였다. 실내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였는데 붙임성 있는 아주머니가 기막힌 오뎅탕을 만들어주셨다. 섹스폰을 부는 아저씨들과는 자주 술을 마시는 듯 했다. 어쩌면 원장은 학원을 운영하는 것 보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학원생들끼지 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얼떨결에 포지션이 기타가 되었다. 중년 취미 밴드의 가장 나이 어린 맴버. 꽃청년.
“그거 아나 서작가? 마흔이 넘으면 문득 쓸쓸할 때가 있데이. 그거는 가족도 여자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기라.”

원장은 외롭다는 타령을 많이 했다. 아저씨들이 음악학원에서 색스폰을 부르는 이유도 똑같은 이유일까? 뽕짝 멜로디를 반주에 맞춰 부르기 위해서 퇴근길에 간판도 없는 음악학원을 기웃거린다. 삐이익 하고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만 배우는 것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방음시설이 되어 있는 연습실에서 누가 들을까봐 문을 꼭 닫고 연습한 뒤, 색스폰을 놓아둔 채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마스터 하고 싶은 것은 어려운 재즈가 아니다, 예술이 아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홍도야 울지마라… 캬바레에서 듣던 구성진 멜로디를 지하철 무대에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연주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가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마치 늦바람이라도 난 듯이 조심조심.
기타를 배운지 두 달이 약간 넘었을 때 나는 황혼을 삼분의 이쯤 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에 적당히 굳은살도 베였다. 아내는 맨날 똑같은 곡을 들어서 지겹다고 했지만 가끔씩 내게 그 곡을 쳐보라고 주문했다.
어느 날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또, 우포식당으로 오라는 것인가?
“어이, 서 작가. 삼십 만원 있나? 갑자기 쓸 데가 있어서 그라는데 현금이 없네? 옆에 살고 있으니까 전화해 봤다.”
그 때 정확히 어떤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 ‘카드 값도 못 냈어요.’, ‘죄송해요, 없어요.’…. 아무튼 거절을 한 건 확실하다. 원장이 전화를 끊을 때 뚝, 하던 소리가 기억나니까. 원망을 가득 담은 그 소리. 너도 친구가 아니었다고 말 하는 그 소리.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부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다고 하는 원장의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내가 아니라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겠지. 분명 우포식당에서 술을 함께 마시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바쁜 일이 있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는 짬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전화를 받은 후로 학원에 가지 못할 소소한 핑계가 생겼다. 한 번 빼먹은 레슨은 두 번, 세 번 빼먹기가 더 쉽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등록했던 삼 개월을 채웠으니 학원을 가야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이제는 혼자 연습해도 되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타를 잡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손가락의 굳은살은 사라져서 다시 말랑말랑해졌다. 그러는 사이 긴 여행을 다녀왔고, 학원이 있던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

‘연습실 전세. 2층 집 전세.’
그렇다. 학원이 사라진 것이다. 학원 뿐만 아니라 2층에 살고 있던 가족도 다 함께 사라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포식당도 문을 닫았다. 학원과 우포식당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 둘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기타는 먼지가 쌓여서 가방 안에 두었다. 왼쪽 집게 손가락에 통증이 생겼는데 에프 코드를 너무 심하게 잡아서 그런가 싶어 기타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타샘을 만나게 되었다. 밴드와 함께 해운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학원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원장이 야밤 도주를 했단다. 못 받은 돈도 많고, 드럼 선생님은 돈까지 빌려줬는데 받지를 못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어른 수강생들에게도 돈을 빌렸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실망했다. 전직 조폭이라고 해도, 마음은 따뜻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줄로만 알았다. 중년이 더 외롭다는 그의 제스쳐에 다른 중년들도 넘어갔을 것이다. 어디선가 크게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색스폰에 먼지가 쌓여서 케이스 안에 들여놨겠지. 아니다. 색스폰은 학원에 보관해두었으니 그것마저 다 쓸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황혼을 연주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아픈 것은 기타 때문이 아니라 목의 자세가 좋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기타를 잡지 않는다. 이상하게 뚝, 하고 관심이 끊어졌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씩 휴대폰에 담아둔 오시오 코타로의 연주가 랜덤플레이로 튀어나올 때마다, 우포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중년 아저씨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뭔가를 해보지만 잘되지 않았던 사람들 말이다. 원장도, 색스폰을 배우던 아저씨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