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녹턴 Op.9 No.2

곡 연습은 집중적으로 2개월 정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연습과 실재 녹화를 위한 연주는 다르다. 가령 70퍼센트까지 연습을 하는 건 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일이지만 90퍼센트 정도까지 완벽하게 연주하는 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짧은 곡이라고 해도 남들 앞이든, 카메라 앞이든 실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것은 혼자서 재미삼아 연주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결국 이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반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걸 위해 엄청 노력한 건 물론 아니다. 중간 중간 연습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글을 쓴다고 정신이 팔린 적도 있었다.(그놈의 글) 결국 집에서 연습하는 디지털 피아노로 연주는 대충 완성했는데 나는, 밖에서 연주를 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88건반 짜리로. 88개의 건반을 다 쓰는 곡도 아니고, 앞으로 쓸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꼭 그게 필요하냐고? 필요한 것만 사는 것과 필요 이상의 것을 준비하는 것의 차이다. 작은 수의 건반으로 계속 연습하다 보면 그 안에서 머무를 것 같은 느낌(실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이 들었다. 가볍고, 건전지로 구동가능한 새로운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문제는 이 피아노의 터치가 구리다는 것. 플라스틱 스프링 느낌이라 강약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다. 뭐, 힘들지만 그 상황에서 해야만 하면 해야 하는 거지.

이 동영상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아내가 오두막을 다 완성하기를 기다렸다.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피아노를 칠 거야, 라고 말한 게 진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했다. 휴대폰으로 찍으면 되지, 이미 캠코더가 두 개 있는데 왜 또 그런게 필요하냐고 (주로 아내가) 묻는다면 이 동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필름 느낌의 포커스가 가능한 카메라로 찍어야지 내가 바라는 느낌이 표현된다는 걸, 늘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엔 광각으로 풍경을 담을 수 있고 녹음이 잘 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아주 가까운 사물(가령 피아노나 강아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고성능의 미러리스, 풀 HD의 카메라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샀다. 또, 그걸 처리하기위한 컴퓨터도 필요해서 씽크패드 중고를 구입했다. 도대체, 이 동영상이 뭐길래 그런 돈과 시간이 필요한 건가?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취미라고 해도 되지만 여기엔 뭔가가 더 있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걸 아는데,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확히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아무튼 요즘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고 그 결과가 이 동영상인 것이다. 세팅은 끝났으니 좀 더 다양한 곡으로 다양한 촬영을 해보는게 남은 일. 언제나 시작이 힘들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귀찮은 나를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다.

콩을 심었던 봄

5월에는 주로 콩을 심었다. 콩을 심을 준비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작은 따을 샀는데 그곳이 농지로 등록되어 있어 뭐라도 심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게을러서 육체 노동은 싫어한다. 주변사람들은 콩을 심으라고 했다. 아무리 이상한 땅이라도 그저 뿌리면 쑥쑥 자라난다고. 거짓말처럼 쉽다고. 칫, 그건 사람들의 말이고 우리처럼 처음 농사(비슷한 것)를 지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쉬운게 어렵게 보였다. 돌양은 한 술 더 떠서 편집 디자이너 출신답게 줄을 만들어 고랑을 파서 일정한 간격으로 심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그냥 땅에 콩을 뿌리라던데….

아무튼, 유튜브와 이것 저것의 정보를 조합해서 땅을 일궜다. 작년에 한 번 대충 포크레인으로 갈았지만 다시 갈려고 하니 딱딱한 곳도 있고 잡초도 많이 나 있었다. 또 다시 포크레인을 부르기엔 돈도 들고 면적도 그닥 넓지 않아서 사람의 힘으로만 땅을 다시 파헤쳤다. 고랑을 만들고 콩을 심었다. 처음 심은 콩은 비가 사흘 연속으로 쏟아져 다 썩어 버렸다. 다행히, 내가 여행을 가 있는 사이 돌양과 오미사(미소된장을 만드는 후배, 일종의 소작인이라고나 할까?)가 콩을 심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돌양은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그 방식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렇게 심은 콩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뭔가, 뭉클한게 있다. 이런 것이 내가 가꾼 생명이 자라는 기분인가? 서리태도 있고 제주 토종콩도 있고 종류가 여럿이다.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해서 미소된장도 만들고 두부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작년에 심어볼 걸 그랬다. 그 때 이곳은 잡초로 가득했는데, 뭐라도 심는 게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 경험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이제부터 제주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하나 심으라고 할 작정이다. 작은 나무면 더 좋겠다.

음악은 ableton live 10 에 들어있는 새로운 악기 wave 를 써봤다. 오토메이션으로 필터를 조정해서 패드의 음색을 조정했다. 퍼커션으로 딸깍거리는 리듬을 만들고 후반부에는 DS Drumset 를 추가했다. 베이스 드럼을 조금 더 키웠어야 하지 않나 싶다. 처음엔 멜로디가 있었지만 이런 추상적인 분위기 음악엔 멜로디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라 뺐다. 딱히 유려한 멜로디도 아니고. 실은 이런 음악은 이런 영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뭔가 인위적이고 기술적인 느낌), 뭐 나쁘지 않다.

콤보 스페셜의 봄은 우리 인생에 몇 번?

왈츠 풍의 3/4박자 곡을 만드는 건 의외로 어렵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4박자 리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쿵 짝짝, 은 춤 추는 것이 아니면 뭔가 어색한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삼박자의 곡은 나긋나긋함이 있다. 아마 100 이상의 빠르기에서만 삼박자 곡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

멜로디가 단순할 때, 반주를 약간 비틀어볼 수 있다. 아니면 비튼 반주에 단순한 멜로디를 얹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A-B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곡에는 A부분에서 약간 이상한 반주로, B 부분은 그걸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건 계획적인 건 아니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긴장-해소 관계는 어디서나 통하는 법이니까. 삼박자 리듬은 아주 힘들다. 차라리 장난감 처럼 가는 게 나은 것 같다. 내가 시도하는 거라고는 베이스 드럼을 쪼개거나 하이햇을 이리저리 빨리 쳐 보는 것이다.

동영상은 올 봄에 찍은 걸로 했다. 벚꽃이나 유채꽃은 지겹지만, 4월 말이 되면 우리동네에 지천으로 핀다. 동시에 피는 시간이 약 1주일이다. 매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인위적인 축제도 커진다.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그게 뭐 어떻다고? 사는 데 1이라도 도움이 되냐고? 딱히. 하지만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봄의 개수도 한정되어 있고, 유채꽃과 벚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콤보 스페셜의 기회는 더욱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순간의 삶을 사랑하자….라는 뻔한 말은 하기 싫지만 진짜 삶은 순간이지 않은가? 매 순간을 축복해야 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