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오월의 비

원곡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고, 꽤나 유치한 멜로디였다. 코드 반주에 억지로 멜로디를 얹힌 느낌이라고 할까? 그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프레이즈만 따서 전혀 새로운 곡은 만들었다. 마침 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올해 봄 비는 왜 이리 자주 내리는 걸까?) 동네 풍경을 찍어서 비디오에 넣어보았다. 요즘에 피아노 위주의 곡들을 너댓곡 만들었는데,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솟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마치, 매일 매일 재미있는 단편소설을 썼던 날들과 비슷한 것 같다. 이사를 가면 아마도 광안리의 집 주변 풍경이 아련하게 느껴지겠지.

#057 강정 짐노페티

에릭 사티의 짐노페티를 연습하고 있다. 굉장히 단순한데 쓸쓸한 멜로디다. 작곡법에 도움이 될까 해서 연습해보는데 왼쪽 손이 한 옥타브씩 위로 코드를 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인터넷을 뒤지다 원곡 미디 파일을 찾았다. 후훗. 그래서 그걸 반주로 넣고 멜로디를 지운 후에 멜로디만 리페이스 시피로 연습해서 연주를 해보았다.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곳에서 연주하려고 했지만 이미 벚꽃은 거의다 져버렸다. 강정마을에도 져 버렸다. 자연을 해치고 군사시설이 들어오는 곳에서 화려한 벚꽃이라니…어울리지 않지만 또 어울린다. 이곳에서 연주를 하려고 했으나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포기하고 주위를 배회하다가 중문의 컨벤션 센터 앞,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의외로 벚꽃도 많고, 쓸쓸한 곳이다. 연주 중에 뒤에 서 있던 차가 자리를 떴다.

#052 눈오던 날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 산간에는 눈이 많이 오지만 해안가인 표선에는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눈이 내린다고 들었다. 오늘이 그 때인가 보다. 아침을 잔뜩 차려먹고(황태국-산적구이-옥동구이) 위미리에 있는 와랑와랑 카페로 향했다. 눈 오는 날은 연주를 밖에서 하기 힘드니까(악기가 젖는다) 카페 안에서 찍는 건 어떨까 생각했던 것이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정연 커플이 놀러왔기 때문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카페에 수다를 떨러. 눈이 퍼붓는 바깥에서 안쪽을 향해 찍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위미로 넘어가자 눈발이 약해졌다. 가지에 눈이 쌓여 있지도 않았다.게다가 카페엔 손님이 많아서 안에서 찍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한산해지고 난 후에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주인장은 이곳에 이주해서 목공 공방겸 카페, 민박을 차린 분이다.

“저기, 뮤직비디오를 찍으려는 데요 한 10분간 찍어도 될까요?”
“네에?”
“아..상업적인 건 아니구요 그냥 취미입니다. 음악도 들리지 않을 거에요.”
주인장은 피식 웃었다.
돌양이 찍어줬는데 등 뒤가 화끈 거렸다.

차를 타고 표선으로 돌아가는데 눈발이 굵어졌다. 신풍리의 땅에 올라가는 길은 심각하게 눈이 쌓여서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온 세상이 환해진 풍경을 담았다. 작년에 일본의 니가타 현에서 눈을 많이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눈을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카페에서 건반을 칠 때엔 눈이 오지 않았지만 눈오는 풍경을 찍어서 편집을 해 보았다. 어차피 하루만에 벌어진 일이니까. 곡은 피아노를 쓰지 않고 전자 피아노를 써서 만들어 봤는데 눈오는 풍경에 잘 어울린다. 효과음도 바람이나 눈을 밟는 소리같은 것으로 들린다. 미리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