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지난 6월 초 유럽을 잠시 다녀왔는데 첫 목적지는 코펜하겐이었다. 북유럽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했지만 처남이 살고 있어서 안심하기도 했다. 중국을 경유하는 저렴한 표를 샀다가 터미널 경유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호객행위를 하는 총알택시를 타고 겨우 도착. 바가지를 씌웠지만 주머니에 있는 5천원 한국돈으로 해결했다). 코펜하겐은 쌀쌀했다. 날씨 뿐만 아니라 건물도, 분위기도 사람들도. 생활수준이 높고 잘 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그래서 거리도 깨끗하고 디자인도 깔끔하지만 사람이 사는 활발한 기운 같은 게 없다고나 할까? 유럽이라고 하면 기대되는 광장과 오래된 교회, 성 같은 게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지가 변변찮게 쇼핑번화가와 함께 있을 뿐, 그 지역을 벗어나면 다 조용했다.

물가는 예상한 대로 우리나라의 두 배쯤이라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어도 약간 부담스러운 정도라고나 할까? 처남은 호주와 이스라엘에서 일하다가 이곳에 2년 전쯤에 정착했다. 깔끔하고 아담한 원룸에 사는데 그의 침대를 내가 차지하고 4박 5일을 보냈다. 관광지 중에는 티볼리 공원이 좋았다. 유럽 내의 최초의 테마파크라고 하지만 규모는 그닥 크지 않다. 도시 한 가운데 있고, 좀 구식이지만 정겨운 놀이기구가 있다는 게 좋았다. 놀이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재미있지만 기괴하다. 오래된 놀이동산일 수록 그렇다.

관광지 보다는 식물원이나 공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식물을 전시해 놓았으니 보시오, 라고 강압하기 보다는 알 듯, 모를 듯, 자연스럽게 심어두고. ‘이게 뭐지?’라고 궁금증을 일으켰다. 조경의 대부분이 그런 자연스러운 조화에 중점을 둔 것 같았다. 북유럽 맥주 테마로 보리, 호프, 등등을 야외에서 자연스럽게 전시해 놓은 것도 좋았다. 식물원 이외에도 프레드릭스버그 정원도 궁전을 중심으로 시원한 분수와 동물원, 여러 오솔길과 인공호수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잔디밭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휴일을 즐기자, 라는 분위기가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될 것이니 햇빝이나 쬐 볼까, 하며 다들 밖으로 나온 분위기라고나 할까? 이런 여유가 내심 부러웠다. 물가가 높고 생활 수준이 높은 게 부러운게 아니라, 차분하고 여유로운 그런 분위기가. 물론 이런 것을 즐기러 일부러 코펜하겐까지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햇빛이 비치는 공원에서 유유자적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짧은 멜로디를 만들어 코펜하겐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편집해보았다.

루비아 섬 단상

누르

“디스 이즈 노 페이”
루비아 섬의 하나뿐인 식당의 요리사이자 웨이트리스인 누르가 도넛 세 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작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 방갈로가 두 개 밖에 없는 데다 풍경이 기가 막혀서 꼭 한 번 묵고 가자고 마음 먹었던 터였다. 이번엔 드넓은 잔디도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방갈로는 비어 있었다. 혹시 묵을 수도 있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히 비치가 번잡하게 느껴진 우리는 다음날 바로 루비아 섬의 방갈로로 옮겼다. 한 바퀴 돌아봤자 20분도 안 걸리고 방갈로는 서너 개 밖에 없으며 그나마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서 두 팀 뿐이다. 식당 메뉴는 한정되어 있고 전기도 밤에 한정적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을 모두 상쇄시켜준 건 자연과 누르다. 메뉴에도 없는 저녁을 만들어주고, 바나나도 주고 코코넛 빵도 만들어주었다. 전 세계의 친구들과 화상통신을 수시로 하는 걸보니 꽤나 심심한 것 같았다. 스물 아홉에, 미혼.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섬에서 일하니까 당연하다. 누르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설사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도.

세 명의 드라이버


택시와 툭툭만 타지 않는다면 동남아 여행은 훨씬 기분이 덜 나빠진다. 바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눈뜨고 당하는 뻔한 기분이 싫은 것이다. 우버에 필적하는 그랩 서비스가 동남아에 퍼지면서 그럴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인도네시아의 작은 도시나 섬에 그랩은 아직 상륙하지 않았다. A는 반다아체 부두에서 작년에도 본 택시기사다. 젊고, 명랑하고 가격은 높게 부르고, 어떻게든 다른 관광상품을 판매하려고 노력한다. 웨 섬으로 가기 위해 반다아체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부두로 갔는데 아뿔싸, 간발의 차이로 배를 놓쳤다. 어쩔 수 없이 시내에서 하루를 묵어야했는데 그를 발견했다. 그가 추천한 호텔을 거절하고, 어쩐지 그에게 속는 기분이 들어,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텔에서 묵었다. 다음날 부두로 가는 차편도 그에게 예약을 해서 편하게 갔다. B는 웨 섬을 빠져나올 때 만난 툭툭기사다. 신용카드가 갑자기 정지되었고, 다음날 배를 타기 위해 시내로 나왔는데 시내의 현금지급기에도 카드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백달러 짜리 지폐가 있었고, 그는 적정환율로 바꾸어주었다. 달러를 종류별로 모으고 있다나? 그가 아니었으면 일요일날 은행도 문을 닫아버려, 돈도 없이 고생을 조금 했을지도 모른다. C는 반다아체 부두에서 공항으로 태워준 툭툭기사. B를 만났을 때에도 슬쩍 본 적이 있다. 몇 번만 이곳을 더 여행하면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 기사를 대부분 알아볼 지도 모른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C에겐 순박한 앞에서 말한 뻔뻔한 기사들과 다른 순박함이 있었다. 지금 까지 탔던 툭툭이중 가장 낡아빠진 툭툭이에 짐과 세명의 손님을 싣고 의기양양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갈 때 보지 못했던 멋진 가로수와 논, 화산과 하늘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바람을 많이 맞는 건 덤. 커피를 한잔 하고 가자고 멈췄다. 실은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빵집을 운영했다. 반다아체를 강타한 쓰나미가 가게 뿐만 아니라 열 명의 가족을 앗아갔다. 그는 세명의 아이가 있는 가장이다. 그가 사진을 보여주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니 정말 친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빨리 돈을 벌어 새로 빵가게를 차리기 바라면서 팁까지 더 주었다. 공항 안은 비싸니까 밖에서 음식을 먹으라는 팁을 우리에게 주었다.

진짜 휴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당연히,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자꾸 뭔가를 해야 하고 어딘가를 가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루비아 섬은 어딜 가려 해도 갈 곳이 딱 정해져 있고(바다 두 군데, 산책길 하나), 해야 할 것은 스노클링 밖에 없다. 삼박 사일 중 이틀은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파란 바다와 푸른 숲을 보면서.

2/8-11

이보히 비치 단상

노마는 우리를 반갑게 안아주었다. 타지에서 이런 환대를 받는 것도 오랜만. 그 때까지만 해도 노마의 방갈로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몰랐다. 작년에는 이런 분위기였다. 한 달 넘게 묵는 장기 투숙자, 주로 유럽에서 온 노인들이 조용히 지내면서 저녁에는 노마가 만들어주는 밥을 옹기종기 둘러 앉아 먹었다. 뷔페식으로 양껏, 인도네시아 가정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하나의 테이블에서 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숙객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눈에 띄게 바뀐 것은 그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줬다는 것이다. 이제 막 오픈을 해서 메뉴판을 칠판에 그리고 있었다. 메뉴는 주변 식당에서 파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식당주인은 동유럽에서 온 여자 같고, 요리사는 동네 청년, 서빙을 하는 두 남자도 동네 청년이다. 20년 쯤 젊었더라면 그런 분위기를 더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밥 말리 풍의 노래를 틀어놓고, 일을 하다가 직원이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치는 그런 식당.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진짜 평화를 찾으러 왔지, 그럴듯한 평화를 찾으러 온 건 아니었다. 우리는 새로 지은 방갈로에 묵었는데 하필 또 그 방갈로가 식당 바로 아래에 있어서 사흘 밤마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다행히 바다는 그대로였다. 숙소 바로 앞에 입수를 하면 커다란 산호 바위가 나오는데 주변에 물고기가 많다. 아무도 가지 않는 산, 자세히 살펴보면 산책로를 찾을 수가 있다. 을 넘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 방갈로가 하나 뿐인 바다가 있다. 그곳엔 여전히 산호가 많고 물고기도 많았다. 하지만 수린 섬보다 덜 맑고, 산호도 지저분했다. 물론 이 정도도 보통 아쿠아리움보다는 훨씬 예쁘지만. 너무 좋은 것을 미리 보면 다음 것들이 시시해진다는 걸 깜빡했다.

작년에 봤던 P양이 사고를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입 주변이 찢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P는 오빠, 오라버니, 언니, 를 말 할 줄 아는 자칭 이 동네 관광 가이드다. 사람을 약간 귀찮게 할 정도로 사교성이 많다. 하지만 아이도 있고 모셔야할 엄마도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베일을 쓰고 나타나 짠, 하고 입을 보여주었다. 아직 여기저기 멍이 들고 꿰멘자국이 있었다.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아서 안심했다. 힘을 내라고, 견뎌낼 수 있어.
눈 앞에 바로 보이지만 헤엄쳐 가기는 약간 힘든 섬, 루비아 섬에 헤엄을 쳐서 갔다. 핀을 장착하고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갔기 때문에 딱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작년에는 두 번이나 왕복했다, 이번엔 도중에 작은 해파리들의 공격을 받았다. 아얏, 아야얏. 항구 쪽엔 스노클링 투어를 온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둥둥 떠 다녔다. 우리가 좋아하는 곳은 그 반대편이다. 커다란 잔디밭이 있고 절벽과 자그만 해안에 방갈로 하나씩. 그리고 레스토랑 하나. 사람들은 거의 없고 풍경은 기막히다. 작년에 이곳에서 며칠 머물자고 했는데 식당에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잔디와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사람이 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를 뜨기 직전, 가게에서 한 여자가 하품을 하면서 나왔다. 작년에도 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우리는 내일 부터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새롭고, 조용하고,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곳에서.

2월 5-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