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의 여고생 자매

제주시에 친구를 맞이하러 가는 길에 허기가 져서 김밥집에 들렀다. 여고생 한 명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고 동생인듯한 소녀가 김밥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부모님은 어디갔어요?”
“휴일에는 저희가 도와 드려요.”
요리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멸치와 고추가 들어간 김밥, 떡볶이가 수준급이다. 물론 엄마가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해놨겠지만 십대 자매가 둘이서 가게를 꾸려나가는게 대견했다. 떡볶이의 신맛은 매실 때문이라고 친절히 설명도 해준다. 오뎅국물도 게를 넣어서 맛있었다.
“대학은 육지로 갈거니?”
아이는 주저 않고 ‘그럼요.’ 라고 답했다. 의대를 진학할 예정이라는 걸 보니 공부도 꽤 잘하는가 보다.
“졸업하고 제주로 내려올 거야?”
아이는 주저않고 ‘아니요’ 라고 답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안다. 모든 게 다 있는, 대도시인 제주시에 살고 있어도 섬에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십대는 답답함을 느끼겠지. 그런데 육지에 가봤자, 복잡하고 별 것 없는데. 이런 말을 해도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어도, 그 안에 오래 머물다보면 일상이 될 뿐이다.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곳이란,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좋겠지. 나도 그런 식으로 참,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다. 김밥과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지폐를 건넸다. 잔돈은 받지 않았다.

발리카삭 섬의 조안

스시 먹어 봤어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식탁에서 조안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물었다. 나와 아내는 필리핀 발리카삭에서 그녀의 시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있었다. 섬을 도는 데 한 시간도 채 안걸리는 작은 섬이라 숙소 사정이 어려운 이곳에 사람들은 다이빙 투어를 주로 온다. 우리는 어렵사리 민박을 구했다. 방은 침대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은 이 동네에 몇 채 되지 않았다. 식당이 없기 때문에 이 집에서 해주는 밥을 하루에 두끼씩 먹었는데, 주로 쌀밥에 생선 튀김, 돼지고기 양념구이, 가지 구이 등이 나왔다. 이 집 사람들은 밥 위에 국물과 생선 같은 것을 간단히 얹어 먹는 것 같았다. 같이 먹자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스시는 밥에 설탕과 식초, 소금을 적절히 배합해서 양념을 하고 그 위에 날 생선을 올린 거야. 조안은 마닐라에서 대학을 다니는 도중, 스물이 되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나았다. 마닐라에서 왜 이런 섬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묻자 공해 때문이란다. 폐가 좋지 않아 도시에서는 견딜 수가 없다었고. 일본에 가서 출세한 이모(부자긴 해도 인심은 그닥 좋지 않다), 마닐라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한국에 돌아가 부자인 남자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남자가 마마보이라 포기)이야기도 했다. 내가 작가라고 하니 꼭 다음에 책을 읽어보고 싶단다. 영어로 번역된 단편소설 브로슈어와 내가 가진 영어 책들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꼭이요, 꼭. 선물을 보내주기로 한 손님들은 잊어버리곤 하거든요. 도서관도 없어요. 책은 서점에 가서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요. 우리 나라는 가난하거든요.

나는 아무렇게나 자신의 나라가 가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내가 보기엔 세상에서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섬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긴 인터넷도 잘 안되거든요. 조안은 내 휴대폰에 파일을 공유하는 앱을 설치하고 내 휴대폰에 있는 앱과 음악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송시켰다. 새로 산 내 휴대폰을 부러운 듯이 바라봤다. 화면이 굉장히 크네요. 우리가 떠나면 새로운 손님들이 올 것이다. 무뚝뚝한 시어머니는 힐긋 힐긋 우리 테이블을 쳐다봤다. 아내도 조안을 신경쓰는 눈치다.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조안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집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한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애를 키우고 나면 다시 대학에 갈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러길 바래요. 라고 대답했지만 어쩐지 기약없는 말처럼 들렸다. 우리가 떠나면 조안은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에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반짝 반짝 눈을 뜨고 듣겠지. 스시는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겠지. 하지만 조안은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놀러온 사람들은 이 섬의 생활을 동화속처럼 생각한다는 걸 말이다.

나는 조안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막상 필리핀에서 돌아와서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만다. 조안은 어쩌면 지금도 내가 보내줄 책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도, 보내지 않는다. 나도 그녀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저 그런 관광객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는데도.

그 날의 파스타

로마에서 할 일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한 달 패스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카페에서 무작정 내렸다.

“메뉴 있어요?”

뚱뚱한 아주머니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파스타는 다 만들어 줄 수 있어. 말만 해봐.”

아주머니는 영어를 꽤나 잘했다. 테이블이 도로에 너댓개가 있었는데 점심을 해결하러 온 직장인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봉골레 파스타를 먹고 있길래, 파니니 하나와 봉골레를 시켰다. 양념은 딱히 특별하지는 않았고 올리브유와 마늘, 화이트 와인, 그리고 홍합과 조개를 약간 섞었을 뿐이다. 면은 직접 만든 거라 울퉁불퉁했다. 심심해서 계속 먹다보면 맛있어지는 이상한 맛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양이었다. 열심히 반을 먹었는데도 한 접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니니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포장을 했다. 술을 마시면 허기가 지기 때문에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시도해보았지만 삼분의 일 정도를 남기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계속 불러서 저녁은 건너뛰어야 했다. 물론, 집에 와서 와인을 또 마셨지만. 한국에 와서 가끔 이탈리안 레스토랑(스스로 가는 경우는 없다), 이라는 곳에서 파스타를 먹으면 그 때가 생각난다. 한국의 파스타가 훨씬 정성스럽고, 들어간 것도 많지만 어쩐지 그 날의 파스타가 진짜 파스타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