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ami 2010.3.1

호텔 옆에는 David Cafe에서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아뿔싸, 여기는 남미 카페였지. 후회를 했을 때엔 이미 늦었다. 지난번 리틀 하바나의 빵가게에서처럼 에스프레소 커피를 준다. 물론 달디단 에스프레소다. 나쁘지 않지만 아침부터 독한 에스프레소라니. 나는 이보다 20% 정도의 농도로 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 커피를 들고 마이애미 비치를 산책했다. 휘황 찬란한 밤에만 지나다녔지 낮에는 해변을 돌아다니지 못했다. 해변으로 난 호텔의 바에서는 아침을 팔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 갈 계획이 있었다. 해변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넓고 하얗고 깨끗하다. 뜨거운 태양이 빠져 있는게 아쉽긴 한다. 체인으로 감아놓은 비치베드는 여름이 되면 해변으로 좌악 깔릴 것이다.(그러나 해운대 해변처럼 파라솔이 무섭게 들어차지는 않겠지.) 선탠도 즐기지 않는데 수영할 수 없는 해변은 세계 5대 비치라고 하더라도 별 쓸모 없지 않은가. 용기를 내어야만 물로 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바다라니… 아무튼 해변을 주욱 둘러보고 아침겸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우리가 아침겸 점심을 먹으러 갈 곳은 지난 밤 저녁에 마이애미 관광채널의 ‘Best of Miami’에서 보았던 햄버거 가게 베스트 5 중에서 8oz 라는 햄버거 가게다. 비치와 그리 멀지는 않지만 동네 사람들이 올 것 같은 알톤 스트릿에 위치해 있었다. 바다와는 반대 방향이다. 뭐, 사우스 비치 전역이 관광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11시 반이 약간 넘은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커다란 홀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생맥주 리스트. 마이애미에서 제대로 된 맥주를 서빙하는 곳을 못봤다. 그런데 여기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익숙한 생맥주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날씨가 더우면 맥주를 더 마셔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따뜻한 지역 보다는 동북부에 제대로된 제조맥주 회사가 더 많다. 가령 매직햇 넘버 나인이라던지… 침을 꿀꺽 삼켰지만 정오는 맥주를 마시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대신 먹음직한 햄버거와(조리하는데 20분이나 걸린다), 치킨 샐러드를 시켜 먹었다. 8oz 버거에 들어갈 스페셜 소스도 있었는데 뭐니 뭐니 해도 햄버거의 생명은 신선한 고기에 있다. 아바카도나 베이컨, 버섯이나 양파 따위를 많이 넣는다고 하더라도 고기가 비릿하면 다 소용 없다. 광안리 근처에 수제 햄버거집이 있는데, 맛은 나쁘지 않지만 물건너온 호주산 쇠고기의 비릿함은 어떻게 해도 없앨 수가 없었다. 지금 먹는 햄버거는 미국산. 음, 어떻게 소가 사육되는지 알고 나면(무슨 음식이라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나면) 먹을 수 없겠지만, 일단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고 맛있게 먹었다.

어제에 이어 우리는 하우러버 비치로 갔다. 이번엔 대낮에 도착했기 때문에 주차료를 냈다.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에 숙소를 묵고 있는데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당연히 이곳이 누드비치 이기 때문. 우리나 누드로 있는 걸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 속에 있는 것을 신기해하는 관광객의 입장으로 적당한 시간에 도착했다. 돌양은 디자인 작업을 할 것이 있어서 해변에 우산을 꽂아놓고 컴퓨터로 디자인 일을 하고, 나는 일지를 적는 둥 마는 둥, 해변을 두리번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룹을 지어서 온 사람들은 낮은 장막 같은 것을 빙 둘러 놓고 있었다. 허리만큼 오는 것이라 지나가면서 안쪽을 볼 수 있지만 멀리서는 볼 수 없다. 그 속에서 직접 가져온 비치 의자에 앉아 옷을 다 벗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누드로 비치 발리볼을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고. 우리 바로 옆에 드러 누워 있던 남자는 혼자 온 것 같았는데 몸을 한참 태우다가 차가운 물에 첨벙, 하고 들어가더니 맥주를 몇 개 마시고 다시 몸을 태우는 것을 반복했다. 폭설이 내리는 뉴욕주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플로리다에 출장을 와서 하루 정도 시간이 남은 사람(물어보지는 않았지만)처럼 보였다. 누드로 해변을 산책하면서 오랫동안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끌어 앉고 담소를 나누는(옷은 다 벗지 않았다) 게이 커플도 있었다. 아무튼 사우스 비치보다는 보다 연령대가 높고, 느긋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해변에 오면 유난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통닭을 먹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평소에 사다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이곳에서 와르르 읽는가 보다.

해가 점점 지자 우리도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퍼브릭스에 들러서 저녁을 때울 거리-스시와 음료수-를 사서 호텔에서 간단히 식사를 대신했다. 밤에 잠시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했지만 지난 밤 그렇게 붐비던 주말저녁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있었다. 바도 일찍 문을 닫고. 돌양이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다길래 차를 빼서 밤거리를 어슬렁 거렸다. 지미를 깜빡하고 가져 오지 않아 검색은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치킨 윙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 맵고 달콤한 치킨 윙을 사서 돌아왔다. 치킨 윙은 뭐니 뭐니 해도 교촌이 최고인데 말이다. 가게에는 배달부와 나 밖에 없었다. 흥겨운 라틴음악이 나오길래 춤추는 시늉을 했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사실은 낮에 들렀던 8oz 햄버거가게에서 자정이 넘으면 모든 맥주를 1달러에 판다는 광고를 봤다. 자정에 가까워서 들려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혼자 맥주를 벌컥 마시는 것도 좀 우습고 해서. 이럴 때 돌양이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오늘은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 포트 로데데일 공항으로 천천히 가는 일만 남았다.


사우스비치의 아르데코 형식의 호텔들


하나 더 추가


사우스 비치에서 한 컷. 누드비치 아님


여행필수품 3종 세트. 여행서, 아마존킨들, GPS


8oz 바의 맥주리스트


전투적으로 샐러드를 먹고 있는 서진씨


누드 없는 누드비치


왕관쓴 콘도


뉘엇뉘엇 저녁ori (15)

SouthBeach 2010.2.28

와인우드 디스트릭트의 벽화 하나 photo by 강선제
와인우드 디스트릭트의 벽화 하나 photo by 강선제

마치 브루클린의 윌리암즈 버그처럼 마이애미에도 예술가들이 대안 갤러리가 모여 있는 지역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그 지역은 와인우드(Wynwood)라고 불리는데 횡하니 문을 닫은 신발공장과 허름한 집들이 군데 군데 보였다. 그런데 몇 블록 지나가자 우리 눈을 완전히 사로잡는 벽화가 나타났다. 30미터는 족히 될 법한 길이에 높이는 4미터 정도 되는 건물의 벽에 기하학적인 검은 무늬를 배경으로 웅크려 앉아 바닥에 장난을 치는 거대한 아이의 그림이었다. 뿐만 아니라 허름한 집 담장에도 울긋 불긋한 그림. 이건 동네 마을을 미화시킨다고 어설픈 미대 학생을 동원한 그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완전한 프로의 솜씨. 내친 김에 차로 동네를 천천히 도니 별의 별 벽화가 나타났다. 흔한 그래피티도 있지만 남미의 영향을 받은 것도 보이고 정성을 기울인 회화도 보인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갤러리는 문을 닫았지만 한 갤러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벽에는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아티스트가 사람 눈 모양의 무늬를 수없이 반복해서 그리고 있고, 갤러리 밖에서는 햄버거와 소시지를 굽고 있다. 수익금은 모두 부근에 살고 있는 이슬람 여성(주로 박해를 피해서 와서 이 부근을 주기적으로 청소한단다)을 위해서 쓴다고 했다. 아쉽게도 일요일이라 연 갤러리가 많이 없어서 화요일 집으로 가기 전에 한 번 들르기로 했다. 돌양은 이런 곳을 발견한 것이 흥미진진한 듯 했다. 뉴욕의 소호와 챌시도 문을 닫은 공장을 중심으로 예술인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유명세를 치렀다. 땅값이 이후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예술인 들은 다른 곳으로 쫗겨 가야 했지만 말이다. 이곳도 그런 전처를 밟을지 걱정이 들었다.

숙소인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에 들르기 전에 지난 번에 놓친  하우러버 비치(누드비치가 있다던)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목이 말라 마트에 잠시 들렀다. 앞 줄의 한 여자가 아이폰에 다운 받은 쿠폰을 쓰려고 했으나 점원이 받아주지 않아 실랑이가 벌어졌다. 매니저 까지 등장해서 프린트된 쿠폰이 아니면 쓸 수 없다고 말했고, 프린트 하지 않기 위해서 아이폰에서 쿠폰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손님은 응수했다. 나는 물론 손님 편이었지만, 결국 손님은 쿠폰(3$정도의 할인 쿠폰)을 사용하지 못했다. 내 뒤에 있는 나이든 남자 손님은 ‘저런 손님을 대하는 것도 급료에 포함되느냐’며 점원을 위로 했다. 이 동네는 아직 휴대폰에 다운받은 쿠폰을 처리하기에는 통신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닥터 페퍼를 사고(콜라보다 훨씬 좋아한다), 돌양은 주스를 샀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하우러버 비치에 도착했다. 이번엔 인터넷으로 확실한 정보를 확인했다. 비치의 북쪽이 문제의 누드 비치 지역이란다. 알고 보니 지난번에 우리는 남쪽을 헤맸다. 오후 다섯시가 다 되어서 마음은 급했다. 북쪽에 따로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의 아주머니는 우리를 훑어보더니 무료로 주차하게 들여보내 주었다. 아마도 일몰까지가 주차장 이용 시간 이라 우리를 불쌍히 여겼나 보다. 아무튼 대충 짐을 챙겨 해변으로 갔다. 과연, 정말일까 하며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정말! 누드로 지나다니는 사람 한 두명을 발견했다. 죄다 남자다. 중년에서 노년까지. 약간 먼 쪽에는 여자도 보인다. 일부러 담담한 척 하면서 여기저기를 살폈다. 막상 누드비치를 노래부르던 돌양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잘 돌리지 못했다. 그 때, 쭈글 쭈글한 (어디까지 쭈글한지는 말하지 않겠다) 할아버지 한명이 나체로 나타나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어, 사진을? 바다를 배경으로 쭈글 쭈글한 나체 사진을 어디에다 쓰겠다는 겁니까? 몇 장 찍어주긴 했는데, 노출증의 할아버지가 장난을 친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모래사장에서 괴상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게이 커플과 몇몇 남자 나체들을 보았다.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짐을 챙겨 사우스 비치로 향했다. 그래, 내일 이른 오후에 다시 오는 거다.

플로리다에서 마지막 이틀을 머물기로 한 곳은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의 한 복판인 콜린스 애비뉴의 한 부티크 호텔이다. 지난번에 이곳에서 묵지 못하고 고속도로의 모텔에 묵었던 것이 아무래도 맘에 걸렸다. 지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내부는 새로 수리를 해서 모던한 커튼에 실내 장식까지 깔끔한 호텔이었다. 물론 주차는 발레 파킹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여기에 관한 안좋은 기억은 나중에 나온다). 이 지역의 주차 문제는 심각해서 공공 주차장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고 찾더라도 하루 정도는 20불 정도가 넘어가 버린다. 길가에 주차를 하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리셉셔니스트는 마이클이라는 쿨가이였는데 매형이 한국인이라며 내가 북한에서 온 건 아닌지 농담을 걸었다. 도로가 시끄러웠기 때문에 조용한 방을 달라고 했다.

체크인을 하고 번잡한 사우스 비치의 밤거리를 걸었다.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었다. 1930,40년대의 아르데코 스타일의 호텔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것도 모자라 밤에는 휘황찬란하게 내온사인을 비추고 1층에는 레스토랑과 클럽, 바들이 해변을 끼고 줄줄이 이어져 있다. 이건 로스엔젤레스에서도, 하와이에서도 볼 수 없는 파티 분위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이애미 비치에 오는 것일지도. 사전지식이 별로 없이 도착한 동양인 커플로써는 그저 이 분위기를 받아드릴 수 밖에 없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런 분위기에 젖을 나이는 지나버린 것 같다. 20대 중반쯤 되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적당히 붐비는 레스토랑의 길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돌양은 그날 스페셜인 스테이크를 나는 심플한 스파게티를 먹었다. 옆자리의 여자 커플은 진지하게 스시를 젓가락으로 먹고 있었다. 헤이, 아가씨들. 이런 곳에서 함부로 스시를 먹으면 안되. 길거리엔 차들이 엉금 엉금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멋진 리무진도 있고 막 이곳에 도착한 가족도 있었다. 좀 더 파티 분위기에 젖을 법도 하지만 피곤에 절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마라톤 키에서 가져온 코나 맥주(왜 플로리다에서 하와이 맥주를 마실까), 파이어 락 마지막 남은 병을 마시고 멍하게 티브이를 봤다. 마이애미 관광 티브이 채널을 봤는데 흥미로운 역사 다큐멘타리를 틀어주고 있었다.(각 동네마다 있는 홍보 티브이 채널을 즐겨본다) 마이애미 비치의 최초 전성기 때인 30년대부터 시작해서, 2차세계 대전 당신 해군들의 주둔지로, 신병 훈련소로써 활기를 띄던 때, 에어컨의 발명으로 여름 휴가지로 각광 받던 때(여름에 마이애미는 당시만 하더라도 임시휴업을 했단다), 그리고 점점 황폐해졌을 때, 뉴요커의 여자 리포터가 슬럼가가 되다 시피한 이곳의 호텔가를 구해서 역사 보전 지구로 탈바꿈 시켰을때, 대규모의 자본이 내려와 다시 초럭셔리 아파트가 들어왔을 때…. 다큐멘타리는 중간에서 끊어지고 관광 레스토랑 가이드와, 고급 콘도아파트 부동산 에이전트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베스트오브마이애미, 라는 코너에 주변의 베스트 햄버거가게를 소개했다. 그 중 몇 개를 급히 노트에 적어두었다. 아마 아침을 먹으로 가면 될 것이다. 돌 양은 피곤한지 벌써 잠이 들었다. 나도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나름 조용한 안쪽방이었지만 길가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와 음악소리, 어느 방에서 둥둥 거리는 음악 소리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누드비치가 시작되는 지점

옷을 입는 것은 옵션!



Miami 2010.2.28

ori (9)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셨다. 미국에 있으면 아침에 커피를 마시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호텔 룸에는 커피 메이커와 1회용 커피 가루가 늘 마련되어 있다. 가장 싸구려 모텔에도 프론트 로비에는 아침에 커피가 준비되어 있다. 커피를 뽑아 들고 풀로 내려가 보았다. 날씨는 쌀쌀해서 아무도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어젯밤에 아무도 없는 풀에 들어갔기 때문에 딱히 물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밤에 수영을 해서 그런지 기침이 살짝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풀 사이드에 앉아 관광 가이드를 뒤척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풀에 들어가는 것 대신에 풀 사이드에 앉아 있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미국에는 , 특히 플로리다에는 늙은 부부끼리 여행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우리나라는 주로 왁자지껄한 단체여행이라 보기에도 흥겨운데, 이곳의 누부부 여행커플은 쓸쓸해 보인다. 보통 그들은 대화가 없다. 둘 중 하나는 두꺼운 여행 책자를 성경처럼 읽으며 오늘 일정을 짜고 있다. 그 나이쯤 되면 할 이야기가 없어질 수도 있겠지. 나는 은퇴하고 나이가 들어 마이애미 비치나 하와이의 와이키키 비치를 걷는 것 보다는 ‘미리’ 좋은 곳은 아내와 가보고 싶다. 막상 와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만큼 좋지 않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풀 사이드에서 커피를 마셨다. 물론 돌양도 비치배드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까지 할 이야기는 남아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던 비치 배드의 주인인 것 같은 사람이 다가와 자기가 타월을 놔두고(자리를 찜하고) 갔다며 양해를 구했다. 양손에 든 비닐 봉지에는 아침으로 먹을 바나나 따위가 가득 들어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어디서 그걸 구했냐고 물어봤다. 길 건너편에 슈퍼가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도 딱히 풀 사이드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룸 넘버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와싱턴 디시에서부터 지금까지 한달이 넘는 동안 모텔과 호텔을 전전했다. 합하면 다섯 군데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때마다 방 번호가 바뀐다. 카드 키에 방 번호를 적는 것은 위험하다. 키를 분실했다고 치면 이방인이 방 번호를 알고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쇠가 조그만 봉투에 들어있고 그 봉투 바깥에 방 번호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봉투를 지갑속에 넣고 오지 않을 때다. 312번이었나? 아니 627호? 576호? 호텔의 모든 층은 비슷하게 생겼고, 문도 비슷하고, 심지어 방도 똑같이 생겼다. 다행히 감으로 방의 위치를 찾아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왼쪽으로 돌아가서 세번째…이런 식으로 말이다. 층 수까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함께 있는 사람이 나보다 더 건망증이 심하다면 더욱, 문제다. 문득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느껴졌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와서는 기름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칸 밖에 남지 않았다. 이걸로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 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성격상 그런 모험은 하지 못한다. 나, 걱정을 미리 산더미 같이 하는 타입이다. 신경증이 있다. 지미에게 당장 가까운 주유소가 있는지 물어봤다. 여러 군데가 나오지만 제일 가까운 곳으로 직행. 1갤런에 2.99 달러다. 후회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공항에 가까울 수록 기름 값은 비싸지니까. 커다란 커피도 하나 더 사고, 배가 고파 빵도 하나 샀다. 돌양은 더 싼 주요소가 나올거라며 나를 계속 놀린다. 10분 정도 달리니 2.69의 싼 주유소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마음 편한 게 더 좋다. 오늘은 비치에 가기 전에 다운타운을 이곳 저곳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 저녁 비가 와서 찍지 못한 다운타운의 풍경도 (메트로 무버를 타고) 찍기로 했다. 일단 아침을 먹기 위해 리틀 하바나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