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에서 새해를(끝)

1dsc_0075

전쟁 직전의 분위기였다. 아침부터 장을 보기위해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파트 건물에 엘리트(Elite)라는 마트가 있지만 야채나 육류가 부족했다. 가격도 조금 비쌌고. 사람들이 잔뜩 장보따리와 트레이를 끌고 지나다니는데 그곳이 어딘지 몰라 행인에게 물어봤다. 로타리에서 오른쪽이란다. 짜잔, 그의 말대로 심플리(Simply) 마트가 나타났다. 몬티에 지낼때에도 자주 들르던 마트 체인이다. 로마에서는 엘리트->심플리, 데스파->투오디(Tuodi) 순서로 가격이 저렴하다. 물론 가게가 시내 한 가운데에 있으면 약간 비싸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지낸 뒤라 유난히 세일 품목이 많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빵은 3,40 퍼센트 세일을 하고 있고 파스타나 각종 식료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내일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장바구니에 이것저것을 담고 있었다. 우리도 파스타와 소고기, 생선등을 사고 집 근처의 야채 가게(동남아 사람들이 운영하는 야채가게는 유난히 싸다)에서 파와 감자 등을 사 왔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든든히 먹고 밖을 나섰다.
버스가 오지 않아서 트램을 타고 콜로세움까지 갔다. 이미 콜로세움은 차도를 막아놓고 사람들이 빽빽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도로 한쪽에 주욱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리케이트 안쪽에는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선두 그룹이 달리고 있었는데 연약해서 안쓰럽게 보이는 흑인들이었다. 포럼 길로 걷다보니 점점 보통 사람들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프로페셔널한 대회는 아닌 것 같았다. 연말을 맞이하여 로마 시내를 관통하는 달리기 대회 쯤 되겠지. 베네치아 광장을 통과해서 트램을 타고 트라스테 베레로 넘어갔다. 오늘 저녁에 바티칸 성당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다. 오후 네시 밖에 되지 않았다. 돌양이 다리가 아프기도 해서(걷기 힘든 부츠를 신고 왔다), 집으로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치르코 마시모 광장을 지나갔는데 대형 무대가 세워지고 있었다. 로마의 신년 행사를 여기서 치르는 것 같았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은 뒤에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서비스 정지라는 표시를 달고 쌩쌩 지나갈 뿐이다. 산 지오바니에 가서 트램을 타려고 했는데 트램도 다니지 않았다. 걸어서 치르코 마시모 광장까지 갔다. 이미 그곳은 사람들과 장사치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형 무대에는 (이탈리아에서는 유명할 것 같은)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사치에게 구입한 반짝거리는 머리띠를 쓰고 있어서 관객석이 온통 반짝 반짝 거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서서, 모여서 술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초대형 풀밭에 무대를 세워 놓고 다들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일 년 중 오늘이 유일한 게 아닐까? 이것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로마 시내에 있는 모든 장사치들이 샴페인, 맥주, 포도주를 가방에 들고와서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집에서 파티를 하지 않는 로마의 모든 젊은이 들이 술을 한짐 싸들고 와서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나도 페트병에 담아온 와인을 홀짝거렸다. 트로트와 스페인 풍이 섞인 여자 가수의 열정적인 공연이 지나갔다. 밤 11시 20분이 되었다. 우리는 콜로세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은 그 전에 이곳을 떠나 바티칸으로 가려고 했는데 행인에게 물어보니 그곳에는 아무런 행사가 없단다. 이런.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서 새해 행사를 하는 것처럼 바티칸 성당에서 행사를 하는 줄 알았다. 아마터면 컴컴한 광장을 헤맬 뻔 했다. 아무튼, 콜로세움 주변은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정이 되자 여기 저기서 샴페인을 터뜨렸고 콜로세움 안에서는 불꽃을 터뜨렸다. 폭죽은 이삼십분 정도 계속 되었다. 신년 맞이 치고는 가장 시끌벅적하고 전쟁같은 날이었다. 밖에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 데도 취해서 추태를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신기하기도 했다.

2천년 전의 문명생활, 폼페이

1dsc_1130

아침 집합시간은 8시 반. 호텔의 조식이 7시 반에 시작되니까 시간이 빠듯했다. 대충 먹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오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차는 조금 늦게 출발했다. 바로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짜잔, 나폴리 아래의 폼페이에 들러서 간단다. 삼박 사일이지만 알찬 여행이다. 우리끼리였으면 엄두도 못낼 스케줄을 단체여행이라는 이점을 내세워 잘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향했다. 절벽 위에 마을이 있는 곳이 많았다. 주변도시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역간의 분쟁이 사라진 현대에도 그 도시는 사라지지 않고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 애쓰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그 이유가 어찌되었던 것 간에. 풍력 발전소가 많이 지어진 곳도 지나갔다. 여행객중에 풍력발전 터빈에 관련된 업무를 하셨던 분이 있어서 사진과 함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다. 경치가 좋은 휴게소에 잠시 정차해서 (당연히)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다. 사람들은 각양각색, 다른 맛의 특별 파스타를 기념품으로 샀다. 나도 이탈리아를 기억할 수 있는 뭔가를 가져가고 싶지만, 그런 것은 짐가방에 담기지 않기 때문에 포기했다.

폼페이에 도착해서 관광 호텔의 관광 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콘베르사노의 노베첸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저 그런’ 해물 스파게티와 해물 튀김이 나왔다. 역시, 동네 음식점이 좋다. 영어 가이드(화려한 중년 여인)가 붙어서 폼페이 유적을 설명해줬다.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 산에서 용암이 분출된 것이 아니라, 가스가 분출되어 마을 전체가 화석화가 되어버린 비극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마을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가 있었다.(로마 근처의 오스티아 안티카에 가도 볼 수 있다) 관광객의 흥미를 끌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을의 성매매가 이뤄지던 건물을 자세히 보여줬는데 같이 여행하는 팀이 기독교 신자인데다가 청소년들도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반쯤 무너져 있는 집들, 바퀴자국이 있는 도로, 신전들…모두 2천년이 넘은 것들이다. 당시에는 지금 보다 훨씬 좋은 시설의 사우나도 있었다.(로마에는 더 이상 공중 목욕탕이 없다) 빵집과 카페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오래 전의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혹은 더 잘살았다는 것을 알면(비록 평균 수명은 짧았지만) 어쩐지 배가 아파진다. 아직도 베수비오 화산은 폭발의 위험이 있다. 한 순간에 화산재로 뒤덮혀 버릴 수도 있다. 2천 년 후의 인류가 우리의 문명을 발견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맙소사, 그 때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어요!)
로마에 돌아오니 길이 좀 막혔다.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반 경.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몬티의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곳이 우리가 가장 자주 간 식당이다. 한국 식당은 너무 비싸고, 그나마 쌀과 따뜻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이곳이 제일 만만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가 남았는데 새로 묵을 곳이 산 지오바니 성당 근처다. 지난 달에 묵었던 포르타 마조레와도 별로 멀지 않다. 학생 두 명이 사는 아파트인데 한 명은 집으로 내려가 한 명 밖에 없다. 방도 크고 깨끗했다. 주방도 깔끔하고 없는 게 없다. 마지막 토요일이므로, 짐을 던져놓고 로마의 밤을 누볐다. 콜로세움, 베니치아 광장을 통과해 판테온에서 나보나 광장으로. 로마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촌스러웠다. 델 코르소 거리에 무지개 빛깔로 리본처럼 주욱 전등을 단 것은 대단했다. 관광객들도 많고,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모두가 편안하고 익숙한 풍경이었다.

2013/12/28

스머프 마을, 알베로 벨로

1dsc_0870
오늘은 활짝 날씨가 개었다. 어제보다 조금 먼 곳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알베로벨로라는 지역에 갔다. 가는 길은 온통 올리브 밭이었다. 목사님은 한 때 올리브 수확하는 일을 도운 적이 있는데 대가로 수확한 양의 절반을 받았다고 한다. 올리브는 일일이 손으로 다 수확한다. 씨를 포함해서 통째로 갈면 올리브 무게의 약 10퍼센트 정도가 기름으로 나온단다. 산도가 낮을수록 좋은데 이탈리아 산 올리브의 품질은 세계 제일이다. 올리브 나무는 오랫동안 사는 것으로 유명한데 밑둥이 둥글둥글 기하학적으로 생긴 것도 많다.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음식에는 올리브 오일이 사용되는 만큼 어떤 오일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진다.(혹은 그렇다고 말한다) 갓 짜낸 올리브 오일을 (마치 참기름처럼) 샐러드에 뿌려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다고. 올리브를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것을 시장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다. 각 지역에 많이 나는 농산물로 음식의 종류가 바뀌는 것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피렌체에 갔더니 고기가 무척 많고, 이렇게 남부 해안으로 왔더니 올리브 기름과 해산물이 많다. 가격도 저렴하다. 이런 것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 가격이 비싸지고 음식의 핵심이 변형된다. 우리나라에서 정통 이탈리안 파스타가 비싸고,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알베로벨로에는 동그랗고 하얀 벽돌집 위에 지붕도 원뿔처럼 올려진 투룰리 형식의 집들이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스머프 집 같다. 벽의 두께가 1.5미터가 넘어서 튼튼하다. 우리가 산책을 한 지역은 투룰리 형식의 집들이 남아있는 지역이었는데 대부분이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특산품은 테이블 보자기 같은 것에 수를 놓은 것이 많았다. 카페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커피도 팔고 있었고. 회색 지붕 위에는 하얀 색으로 기하학적인 무늬가 하나씩 새겨져 있고 지붕 꼭대기에는 공모양의 장식이나 닭모양의 조형물을 꽂아놓았다. 언덕 위에 있는 교회는 로마의 교회와 비교해서 소박하지만 벽화는 꽤나 현대적이었다. 기념품 가게의 점원들이 적극적이어서 관광지에 들른 단체 관광객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그건 사실이지만) 풍경이 너무 낯설거나 예쁘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아 무감각해져 버린다. 알베로벨로가 그런 동네이지 않을까? 날씨도 맑아서 파란 하늘과 하얀집이 대조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실내 아이스 링크에도 들렀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는데, 너무 심심해서 스케이트나 타러 왔어, 라는 기분으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시인의 식당’ 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시인들을 손님으로 받는 곳인지 주인장이 시인인지 궁금했다. 문을 닫아서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점심은 콘베르사노로 돌아와 노베첸토에서 먹었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 항상 기대가 된다. 안티파스토로… 생선튀김과 버섯 튀김, 호박튀김, 연어회, 양고기와 감자조림, 햄과 사과, 바스케타와 빵, 리코타 치즈와 햄이 들어간 과자가 나왔다. 프리미는 펜네 스파게티, 후식으로는 과일로 마무리. 어제 점심보다 훨씬 맛있었는데 마지막 식사라고 신경을 써줬는지도 모른다. 저녁 찬양은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이 동네 교회 신도와 함게 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낮잠을 자도 시간이 남았다. 동네를 한 바퀴 휘익 돌았다. 호텔 뒤쪽의 좁은 골목 사이 사이로 수공예품과 명품 가게가 숨어 있었다. 알베로벨로에서 본 싸구려 관광상품이 아니라 정성을 들인 티가 한 눈에 봐도 나는 그런 물건들이 이 작은 동네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이탈리아의 진짜 저력이 아닐까? 세상이 중국 제품과 이케아로 뒤덮여도 누군가 수십년, 수백년간 같은 물건을 만들어온 나라가 전 세계에서 몇 군데는 존재했으면 좋겠다.

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는 사이 나는 바 순례에 나섰다. 시내는 격자구조로 길이 반듯하게 나 있었고 크리스마스 휴가라 가게는 반 정도가 열려 있었다. 잘 나가는 바는 바깥만 봐도 알 수 있다. 근처에 남자들이(이번에는 할아버지들이) 별 이유없이 모여 있는 곳이 핫 플레이스다. 교차로 끝 쪽에 바로 그런 바가 있었다.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티브이를 봤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홍수피해가 난 것 같았다.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자포네제?’ 라고 물어봤다. 어제는 중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오늘은 일본 사람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쪽에서 왔냐고 묻는다. 합창은 어제보다 큰 규모였다. 현지 교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우리를 위해서 영어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국팀은 이태리어로 불렀는데 말이다. 세 시간 가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저녁 마무리는 근처에서 농장을 하고 계시는 분의 집(창고 지하실)에서 이루어졌다. 파티분위기로 한국 사람들,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화가 잘 안되어서 구글 번역기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번역을 하지 않아도 우리를 맞아주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가 있던 밤이었다.

201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