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단상 150-15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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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부담을 가지면 문어가 잡히지 않는단다. 돌양의 말이다. 부모님이 내려와서 꼭, 문어를 잡아드려야지, 라는 부담을 갖고 물 속을 휘집고 다녔을 때엔 문어를 놓쳤다. 내가 문어를 본 적이 있는 포인트를 알려줬는데 그곳에서 똑같은 문어(불쌍한 녀석이다)를 발견했단다. 그런데 아, 잡아야 해, 라는 0.5초의 생각 때문에 놓쳐버렸다. 다음날, 우리 둘만 똑같은 곳에 가서는 문어를 잡았다. 문어는 어쩐지 힘이 없어 보였다. 소천지 앞바다는 도대체 몇 번을 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은 진짜 마지막. 나는 바위 뒷쪽의 비밀의 계곡에 들어갔다. 이곳은 바다쪽에서도, 산 쪽에서도 보이지 않는 바다의 계곡이다. 내 천자로 세 계의 작은 계곡이 나 있다. 물도 맑고, 사람도 없어서 가끔 누드로 수영을 한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누드 수영을. 구름도 하나 없이, 붉게 해가 졌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수영이 끝났다.

151.

집으로 오는 길에 공천포에 생긴 예쁜 게스트 하우스 골목을 지나갔다. 농가를 꾸미고 정원엔 중고 폭스바겐 까지 놓여져 있다. 맞은편에는 음식점이 생겼는데 그곳도 아기자기 했다. 문어 라면 같은 걸 판다. 다음에 제주도에 오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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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 작업을 한 적이 있는 H편집자가 동료와 함께 제주도에 왔다. 계획없는 휴가란다. 서귀포로 초대해서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돌양이 잡은 문어와 소라, 가족들이 놀러와서 남기고 간 고기와 야채로 거나하게 점심을 먹었다. 종달리 숙소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부동산에서 봐둔 집에 들렀다. 하나는 가시리의 창고. 맞은편에 폐교 갤러리가 있어서 분위기는 좋지만 창고가 너무 크고 허름해서 고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시리는 위치도 산 중턱이고 젊은 이주민들도 꽤나 살고 있어서 지내기엔 무리가 없다. 두 번째 집은 시흥리의 한적한 언덕에 있는 집. 창고가 있으면 딱 좋겠지만 철거해 버려서 아쉬웠다. 하지만 화장실도 안에 들어가 있고 당장 살아도 무리가 없이 깨끗하다. 뒷마당에서는 멀리 바다도 보이고 용눈이나 다랑쉬 오름하고도 멀지 않다. 종달리 해변을 달렸다. 제주에서 (우리에게) 가장 예쁜 해안이다. 토끼섬 부근까지 걸어가서 낙시꾼들이 뭘 잡나 구경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토끼섬으로 건너가 한 나절 무인도 생활을 해보고 싶다. 물때가 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데 말이다. 편집자가 잡아둔 펜션은 농가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너무 깔끔하고 예뻤다. 뒷쪽에는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펜션도 있고. 정원도 단아하게 가꿨다. 안주인이 친절하고 싹싹했다. 추천해주는 세화리의 횟집에 들러 맛있는 저녁을 대접받고 집으로 향했다. 길고 긴 하루. 제주에서 마지막으로 긴, 드라이브였다.

153.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날, 돌양은 하루종일 짐을 쌌다. 데스크 탑 컴퓨터가 두 대, 모니터도 하나, 악기도 두 대. 먹을 것과 그림 액자 등등. 일단 택배로 세 개를 싸서 보내고 남은 짐은 수화물로 가져가야 한다. 그 와중에도 경매로 나온 집을 구경갔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생태 연구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이다. 넓은 대지에 두 채의 건물까지. 아마도 이런 집을 사면 한동안은 제주에서 정착을 해야겠지. 집을 구경하러 다니는 것이 꼭, 집을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는 곳이 바뀌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상상을 해보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생태원의 허브 밭과 녹차밭을 산책하겠지. 마을과 떨어져서 좀 외롭긴 하겠지만 그 만큼 조용하니까 집필에는 도움이 되겠다. 단점이 있다면 가게 앞에 쌩쌩 차들이 지나다니는 것.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짐을 쌌다. 제주에서 많은 일을 했고, 또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걸 먹었다. 그 중에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자연의 아름다움. 제주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산과 바다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턱이 없다. 너무 아름다워서 살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 이상으로 제주단상을 마칩니다!

제주단상 14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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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서귀포에서 제주로 가는 길은 여럿이다. 가장 빠른 길은 5.16 도로로 가는 것이고 가장 늦은 길은 해안도로를 통해서 가는 길이다. 그 중간쯤 되는 길이 평화로를 타고 가는 길. 우리는 이 길을 통해 가면서 이곳 저곳에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출발할 때엔 분명 맑고 화창했는데 평화로 입구 쪽에서 부터 안개가 자욱해서 비상등을 켜고 달려야 했다. 그래도 해변쪽에 가니 구름이 조금 낀 정도였다. 제주의 날씨는 순식간에 변하고 지역별로 대중없다. 애월 쪽의 농가주택은 아예 씨가 말라서 구할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 들어가서 ‘저기요..’라고만 말해도 ‘없어요’ 라는 대답이 나올 지경이다. 게다가 제주시에 가까워질 수록 동네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삭막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 제주 현대 미술관에 들렀다. 건물도 멋지고 전시도 멋졌다. 여기까지와서 굳이 현대미술관에 올 필요는 없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와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운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무료 입장일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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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식구들 여섯이 제주로 놀러왔다. 첫날 일정은 용눈이 오름이다. 다랑쉬 오름은 가봤지만 이곳은 우리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윈도즈 배경화면처럼 낮은 구릉 언덕에 갈대가 이곳 저곳에 나 있어서 운치가 있았다. 꼭대기까지 가서 분지를 한바퀴 비잉 돌았다. 남서쪽에 풍력발전소도 보였다. 장모님은 제주가 처음이다. 용눈이 오름이 첫 관광지라니, 복 받으신 거다. 이곳은 김영갑 사진 작가가 좋아해서 많은 사진을 남긴 곳이다. 그래서 좀 쓸쓸하기도 하고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장인어른이 중턱까지 천천히 올라오셨다. 장모님과 이모님은 절친처럼 사이좋게 올라오셨고. 내려가는 길에 세화장에 들러 이것 저것을 사고(주로 우리를 위한 먹거리), 맛있는 매운탕도 먹었다. 저녁에는 소천지에 들러 돌양이 소라도 따오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도 바베큐를 해먹었다. 오랜만에 왁자지껄하고 푸짐한 저녁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노는 것이 원래 정상이 아닐까? 제주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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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은 서귀포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산책로 주변에 순환도로가 있어서 나는 장인 어른을 태우고 정상 부근의 편백나무 숲으로 갔다. 때마침 소풍나온 유치원생들이 중턱까지 봉고를 타고와서 옹기종기 걸어다녔다. 휴양림의 하일라이트인 편백나무 숲에서 다른 가족들과 만났다. 평상에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가끔씩 보였는데 아마도, 제주 편백숲의 기운을 받아 자연 치료를 하고 싶은 듯 했다. 아버님의 건강이 조금 더 나아지시길 빈다. 우리는 왜 아프기 전에는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까?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돈을 벌어 그 돈을 병원비로 쓰는 악순환은 블랙코미디다. 제주에 잠깐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정말 뼈가 저리지는 않았어도 후후), 사람이 자연 곁에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도시 생활과 자연 생활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진지하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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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의 입장료는 1인당 2천원이다. 어르신 세 명과 내가 들어갔는데 아차,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한다. 폭포가 바다로 바로 떨어지니까. 폭포가 보이는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천원은 돌려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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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비행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태워주고 우리는 제주도 서쪽을 돌았다. 날씨가 기가막히게 좋았다. 곽지과물해변의 바다빛은 언제나 옥색이다. 협재 해수욕장을 지나 금능 해수욕장에 다다랐다. 금능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좀 하다가 나왔다. 해수욕장은 폐장되어 들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밀물 때라 벗어놓은 짐이 다 젖을 뻔 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짐을 옮겨 주었다. 보동이와 비슷하게 닮은 개를 두 마리 마주쳤다. 주인은 외국인이었는데 이곳에 영어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일을 했는데 이곳이 가장 좋단다. 당연하지. 아무렴. 한경면의 고산리쪽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6천원짜리 점심 뷔페였는데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먹을게 별로 없었다. 싱거운 잡채, 마른 닭볶음, 비릿한 김밥. 그곳에 앉아있는 손님들도 어쩔 수 없이 먹는 표정이었다. 부동산에 들러 집을 하나 봤는데 허허벌판에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창고다. 게다가 이상한 길목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게스트 하우스를 지으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최소한 사람이 살만한 집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대정읍(제주도 서남부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다)의 부동산에도 들렀더니 이곳은 아예, 영어도시 사업으로 개발 열풍이 불었다. 가격이 턱없이 높았다. 카페처럼 단장한 부동산에 들렀더니 어눌한 주인장이 우리에게 충고를 해줬다. 아무래도 동쪽이 저렴하니까 인터넷으로 충분히 조사한 뒤 그곳으로 가보라고. 솔직한 충고를 받아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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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를 하다가 멋진 집을 발견했다. 우리가 구입하고 싶은 농가주택을 멋지게 꾸며놓은 집이다. 집 앞마당은 알로에, 구석구석에 각종 허브와 꽃을 조경해놓고 창고에는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았다. 집도 깔끔하게 고쳐져 있고 마당도 넓다. 포구의 풍경도 단아하고, 최근에 2억을 들여 공사했다는 바다 목욕탕도 있다.(사실은 이게 제일 부러워서 목욕탕에 들어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다) 집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구경을 시켜줬다. 집을 9년 전에 구입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정원을 가꾸신단다. 뒷뜰에는 연못과 분수까지 있다. 텃밭도 마치 화초처럼 예쁘게 자라고 있고. 이건 좀 과한게 아닐까? 제주에는 이런 과한 조경을 취미로 삼는 집이 간혹 보인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것 보다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게 나쁘지 않겠지. 특히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에 상처가 났다면 정원가꾸기는 최고의 취미가 아닐까 싶다.

제주단상 14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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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서귀포는 비가 많이 오더니 구월이 되면서 맑은 날이 많아졌다. 그냥 맑은 게 아니라 눈이 시릴 정도로 맑다. 돌양은 물에 들어가지 못해서 온 몸이 근질 근질 거린다기에 소천지에 갔다. 문어는 잡지 못했다. 소라 몇 개를 캐냈을 뿐이다. 한 여름, 우리는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물고기를 쫓고, 문어를 잡고, 보말을 잡았다. 올레길이라 이런 저런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사람들도 한산해지고 바닷속의 생물들도 좀 한산해진 것 같다. 물은 여전히 따뜻해서 바닷속에 들어가도 될 정도지만 바깥바람은 선선선해졌다.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아래쪽 바다를 구경하다가 바위 아래에 커다란 문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나를 보자 놀랐던지 작은 구멍 사이로 쑤우욱 들어가 버렸다. 내가 발견한 걸 다행으로 알아. 돌양이었다면 반드시 잡혔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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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으면 석양도 붉다. 나는 충혼묘지에서 석양을 보는 걸 좋아한다. 서귀포 쪽에서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도착했다. 세상이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잠든 곳이라 어쩐지 더 쓸쓸하다. 추석이 지나가서 사람들도 별로 없다. 보동이와 함께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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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의 집을 보러갔다. 초등학교 근처에 집이라 장점이 많다고 소개해줬는데 우리에겐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순환도로 옆에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지만 그만큼 자동차 소음이 심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좁고, 집도 굉장히 낡았다. 그래도 농가는 아니다. 지은지 40년 정도 되는 벽돌집에 창고가 있다. 창고는 목욕탕, 세탁실로 사용되고 있고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밖에 있다. 넓은 마당과 밭도 갖고 있다. 가격은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역량보다 비쌌다. 그래도 구경을 온 이유는 집을 구경하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작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리해서라도 구하고 싶은 집이 아닐까 하는 그런 그대. 하지만 집은 너무 낡았고, 주위가 너무 횡했다. 마음에 드는 건 바닷가 쪽으로 가면 나오는 마을이었다. 세화 부근과 토끼섬으로 이어지는 종달리 해안도로는 아마도 제주도에서 가장 푸른 색의 바다가 아닐까 싶다. 서귀포에서는 검고 푸른 바다가 주라면 이곳은 동남아 같은 은은한 하늘색의 바다다. 바위도 그닥 험하지 않다. 그런 바다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좋은 날은 하염없이 운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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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다 싶었더니 또 비가 온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돌양은 책 디자인 마감을 했다.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차를 몰고 무작정 부동산을 가 보기로 했다. 남원에 있는 부동산에서는 꽤 그럴듯한 집을 보여주었다. 가시리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좁은 것을 빼면 집도 넓고, 텃밭과 정원도 컸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제주 사람들은 밖을 나갈 때에도 문을 잘 잠그지 않는다. 안에 아무도 없는데도 여보세요, 라고 말해보고 슬쩍 거실을 들여다 봤다. 세상에는 청소를 열심히 하는 집도 있지만 우리처럼 그닥 신경쓰지 않는 집도 많은 것 같다. 집을 지키는 개 한마리가 비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짖어댔다. 처음엔 사납게, 나중에는 지쳐서. 돌아오는 길에 표선리에 있는 집에 다시 들렀다. 지난 번에 한 번, 소개를 받은 집은데 다시 확인을 하고 싶었다. 조금 아래쪽의 집은 리모델링 중이었다. 지난 번에도 차 한대가 세워져 있고 누군가가 집을 고치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남자 한 명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남자는 나를 쳐다본다.
“아…지나가는 길에…집을 고치고 계셔서.”
무뚝뚝한 남자에게 말을 거는 만큼 쑥쓰러운 일은 없다. 제주도 남자들은 대부분 무뚝뚝하다. 하지만 일단 말을 트면, 그들은 상냥해진다. 남자는 아버지의 집을 고쳐서 민박집으로 개조하는 중이다. 우리도 어쩌면 이곳으로 올 수도 있을거라고 말했더니 그는 “왜 하필이면 이동네에?” 라고 의아해한다. 양식장 바다에서는 죽은 생선의 비린내가 나고, 젊은 사람들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고, 관광지도 아닌 이곳에 왜? 우리도 뚜렷한 대답을 찾지는 못했다. 단지 집이 저렴해서, 라고 하기엔 궁상맞다. 오래된 돌집이라 둥글둥글한 나무로 된 서까래가 나왔다. 천정을 뚫고 깔끔하게 정리하면 예쁜 집에 될 것 같았다. 우리 힘으로 집을 고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