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삼박을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보았다. 카우치 서핑이란, 간단히 말하면 남의 집에서 공짜로 자는 것인데 서양에서는 방이 없어도 소파(카우치)를 내어주는 데서 비롯된 말인 듯 하다. 뭐,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바닥을 내준다. 낯선 사람을 재워주는 것도, 재워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여행을 하기에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앞의 나흘은 평소에 궁금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나흘은 카우치 서핑이 나의 계획이었다. 신청은 마치 에어비앤비 숙소를 고르듯 위치와 주인장의 프로필을 골라 요청을 보내면 된다. 딱히 고르지도 않고 맨 처음 신청했던 것이 아주 손쉽게 수락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실재로 신청을 해도 수락되는 비율은 그렇게 크지 않나보다. 나처럼 나이도 많고, 호스팅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면 더욱. 하지만 주인장인 미스터 고는, 딱히 게스트의 이런저런 정보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온다면, 그게 누구든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그게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았던가.
미스터 고는 이상한 사람이다. 방이 단 하나 밖에 없는, 조그만 원룸에 살면서 카우치 서핑을 한다. 즉, 주인과 같은 방에서 자야 한다. 카우치 서핑이 아니라, 룸 쉐어링이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쓰기 때문에 밤에는 불도 아껴쓰고 휴대폰 충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의 집은 도쿄 중심에서 약 30분 서쪽에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차분했다. 저녁을 함께 만들어 먹자고 해서 장을 봤는데 정확히 반으로 요금을 청구해서 편하기도, 웃기기도 했다. 돼지고기와 버섯, 배추 등을 넣은 나베를 만들어 먹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푸짐하게 먹지 않아.”
국을 꽤나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밥을 두세공기나 비우면서 미스터 고는 말했다.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날씨가 흐리면 발전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버릇처럼 남은 전력량을 확인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의 말대로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되도록이면 거대한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기 위한 도전. 집에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전기가 들어온다는 말에 나중에, 아연실색해 버렸다. 그에게 이건, 정말로 하나의 놀이였던 것이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전등도 희미하게 켜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지내는 것이 제대로인 삶인가…. 싶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집에서 티브이와 인터넷을 마음대로 쓰면서 우리가 하는 짓이라고는 고작 쇼핑을 하거나, 시시한 댓글이나 읽는 거니까. 그것보다는 의미있는 도전 아닌가?
미스터 고는 저체중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엔 47킬로 그램까지 나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그는 몸무게를 올리기 위해 투쟁한다. 그가 아침에 토스트를 네 쪽이나 먹는 것도, 저녁에 밥을 두 공기나 먹는 것도 다 체중 증량 때문이다. 작년에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 같다. 그곳에서 살도 찌고, 영어도 배웠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꼭, 뉴질랜드에서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어학연수에서 다녀온 후, 카우치 서핑 서비스에 등록했는데 내가 여덟번째 손님이었다. 대부분은 착한 게스트였지만 한 두명은 이상한 게스트도 있었다고 했다. 당연하다.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일찍 잠들고, 아침엔 느긋이 잠에서 깼다. 게스트 하우스 보다 훨씬 편안했다. 너무 많이 자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최소한 여덟시간을 자는게 건강에 좋단다. 먹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모두 체중 증량과 건강을 위해서다.
나는 그에게 한 번의 점심과, 한 번의 저녁을 사주었다. 게스트가 밥을 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가 추천하는 최고의 스시집과, 최고의 레스토랑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최고의 맛 보다는 최고의 가성비를 따지는 것 같았다. 그에겐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곳이 최고의 식당이다. 미스터 고는 5월 달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떠난다. 또 다른 도전일 것이다. 처음엔 좀,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만의 기준과 목표가 뚜렷한 사람을 보니, 신가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 게다가 이렇게 복잡한 도쿄에, 이렇게 소박한 목표로 진지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그는 싱글이고, 나보다 나이가 서너살 많다. 결혼할 생각, 연애할 생각은 아예 없다.
- 그는 한 때, 프로페셔널 오르간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거금을 주고 배웠던 적이 있다. 때때로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오르간을 연주한다. 뉴질랜드의 교회에서도 오르간을 몇 번 연주했다. 그의 집에는 중고가게에서 산 스피넷이 있다. 바하를 꽤나 잘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