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vs 어쿠스틱

어쿠스틱 피아노가 디지털 피아노보다 훨씬 소리가 낫다, 는 건 확실하다. 너무 당연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건반이 해머와 연결되어 있고 현을 때리면 다른 현에도 공명이 일어나 피아노 특유의 소리가 나는 것이다. 피아노 소리에 가까운 디지털 피아노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쿠스틱 피아노의 복잡다다한 소리에는 이길 수가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레코딩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어쿠스틱 피아노를 녹음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마이크도 여러 개 필요하고 그 위치도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피아노 소리를 녹음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 피아노는 간단히 사운드 카드에 연결하는 것으로 가능하고, 가상 악기를 사용하면 컴퓨터 내부에서 각종 이펙트를 써서 쉽게 녹음할 수 있다. 녹음된 피아노 연주를 진짜 피아노인지 어쿠스틱 피아노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정도의 기술에 가까워졌다. 클래식 연주를 제외하고, 우리가 팝 음악에서 듣는 피아노 사운드는 거의 디지털 피아노 사운드일 가능성이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피아노 소리는 진짜 피아노가 아니라 디지털 피아노의 소리인 것이다.

여기서 재밌게 생각해볼 수 있는 점. 왜, 디지털 피아노는 어쿠스틱 피아노의 소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가다. 건반의 터치부터 시작해 사운드까지. 진짜 피아노에 가깝다는 걸 자랑스럽게 광고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피아노와 가까운 소리를 내는 디지털 피아노의 가격은 진짜 피아노(업라이트 중고라고 생각해보자)와 거의 비슷하거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무겁고, 소리를 제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쿠스틱과 가까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 비싼 디지탈 피아노를 산다는 건 이상한 것이다. 지금은 21세기고,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피아노 소리에 대한 향수를 카피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져보지 못한 그랜드 피아노의 샘플을 연주해본들 그걸 갖고 있는 기분은 딱히 들지 않는다. 진짜 우리가 필요한 건, 어쿠스틱 피아노하고 비슷한 소리를 내는 디지털 피아노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디지털 피아노일지도. 아니, 그 때는 피아노라는 이름도 바뀌어야 하겠지. 물론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피아노 같은 것도 있지만 피아노를 대처할 만한 매력적인 악기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어쿠스틱 기타가 전자기타로 진화한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과연 혁신적인, 새로운 피아노 악기가 나올만 한가? 글쎄, 아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반 악기에 접근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쿠스틱 피아노를 닮은 피아노 보다 조금더 다르게 접근한 건반악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지하소년의 4장을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의 반 정도를 넘어간 샘이다. 작년에 이미 반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전에 새롭게 쓰기 시작했고, 재활용을 조금 했어도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 되고 있다. 굳이 빨리 써야 할 필요는 없다. 각 장마다 주인공이 번갈아가기 때문에 장이 바뀌면 그 전 주인공의 느낌을 떨쳐내기 위한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아니면 그 느낌을 계속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초반에는 조금 얼떨떨한 것이다. 이제는 여고생의 시점으로 써야 한다. 사건도 중심적인 뭔가가 생겨야 하는데 이 다음부터는 써 놓은게, 생각해 놓은게 아무것도 없다. 후훗. 진짜 시작인 것이다.

개 세마리와 새로운 자동차

중고차로 레이를 구입한 건, 이 세 마리 개를 태우기 위해서다. 제주로 이사올 때 함께 사서 왔던 트럭은 폐차했다. 그 차에는 뒷 좌석이 따로 없어서 짐을 싣는 공간에 두 마리의 개를 집어 넣고 앞좌석 가운데 (당연히) 표순이가 앉았다. 레이는 경차지만 차고가 높아서 시원하고 뒷좌석 공간도 넓다. 레일로 문이 열려서 오르내리기도 쉽다. 돌양이 그 차를 사고 싶다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밭을 가꾸느라 바쁘다. 일은 주로 돌양이 하지만, 나는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 쯤에 나가 돕는다. 허허 벌판 같은 땅에 콩을 심는 게 올해의 목표다. 콩은 아무 땅에나 잘 자란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자란 적이 없는 땅에, 아무것도 길러본 적이 없는 소설가 나부랭이가 제대로 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땅을 파고 잡초를 매고 있다. 이런 건 기계로 반 나절 만에 헤치울 수 있겠다 싶지만 돌양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다. 육체를 가혹하게 부려서 희열을 얻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지만 잡초를 뽑고, 땅을 가꾸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계획은 야영을 하는 것이었다. 오두막에서 자는 거기 때문에 딱히, 야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야영하는 기분은 날 것 같았다. 해가 기울자 고기를 구운 것 까지는 좋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막상 밤을 지내려고 하니 , 비록 세 마리의 개와 돌양이 있지만, 심심할 것 같았다. 차로 십 분만 내려오면 편안하고 밝은 집이 있는데 굳이…… 우리는 짐을 싸서 내려왔다. 다음 번엔 좀 더 준비를 해서 야영을 시도해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