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솔직히 사람들이 왜 소설을 읽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꾸며댄 이야기에 그토록 흥분할 이유가 뭐가 있으며 소위 베스트 셀러를 읽어봐도 어처구니 없게 재미 없거나, 눈물 짜는 이야기거나, 지극히 사념적이고 어려운 단어 일색으로 젠 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주로 수필들, 감동적인 미담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고 나도 일상생활에서 느낀 점들을 담담하게 써 보기도 했고, 실제로 꽤 많이 썼던 것 같다.(1995년과 96년은 그 피크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관한 관심은 물론 해피레터를 시작하는 동기가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하루 하루 삶 속에서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데체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 말고도 보통사람들이 언뜻언뜻 느끼면서 지나치기는 한데 무척 핵심적인 것이고 손에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

변화는 갑자기 일어났다. 소울 메이트가 건네준 무라카미 하루키의단편집을 읽고 던져 두었다가 다시 읽게 되었는데 비로서 픽션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이유는 내가 읽었던 책이 모두 흥미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픽션을 받아드릴 자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무언가들이 픽션속에서 단편적으로,그리고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뭐 거창한 삶의 의미나 자아 정체성따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난 아이가 갑자기 아침에 아프기 시작했는데 굳이 나이 많은 친구와 낚시를 가려고 애쓰다가 포기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말끔히 나아져 있었다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속에서 느껴지는 아주 구.체.적.인 일상생활속에 지나쳐가는 핵.심.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논픽션의 이야기중 80%는 감동을 주고 픽션은 단지 20% 정도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픽션의 감동은 더욱 진하고 때로는 논픽션 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논픽션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높고, 카오스적이며,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픽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정점으로 포커스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타고난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래서 근래의 나는 픽션을 쓰는데 매달려 있고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결코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혹은 출판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해피레터는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에서 나의 글쓰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좋은 글들을 이곳 햇비뜨락이나 개인적인 상담사연을 통해서 “논픽션”으로 읽고 있지만 나름대로 사연을 정리할 때에는 나의 사고방식으로 “픽션”으로 꾸며 보는 것이 요즘 해피레터를 편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물론 순수한 “픽션”을 쓰는 것도 멈추지 않고 있다.

결국에는 무었때문에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읽기도 하고 또 쓰려고 애를 쓰는가? 읽고 쓰는 일하고 상관없이 행복하게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을 읽고 씀으로 인해서 의미를 찾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택했을 뿐이고, 그것을 시작하고 즐기기 시작한 이상 그만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양파링보다 새우깡을 더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더 맛잇는 것이 나타난다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새우깡을 쓰레기 통에 대담하게 버리고 랍스터 따위를 느긋하게 먹겠지만….

2001.7.8

블래키.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너는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늘 창 밖을 홀로 바라보고 있거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침침한 곳에서 앉아 있곤 하지. 가끔씩 너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 착각에 뒤를 돌아보면 너는 그 어느 곳에도 없어.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구나.

처음엔 그저 너를 ‘이상한 존재군…’ 하면서 남들처럼 너를 지나쳤지.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몰라. 해질 무렵 황금빛 햇살이 창 밖을 눈부시게 할 때마다 네가 생각나. 너의 검은 눈동자에 젖어 있던 슬픔 비슷한 것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문득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블래키,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손을 내밀면 너는 다가올 듯 하면서도 언제나 달아나곤 했지. 내가 너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내가 생각해도 나는 “굉장히 멋있고 근사한”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네가 가진 “무언가”의 이끌림의 결정체가 나에게 있을 수도 있지 않겠어?

그걸 찾기 위해서, 혹은 그것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할 시간이 최소한 필요해. 그런 기회도 설마 주지 않는 건 아니겠지? 아마 내가 너를 귀찮게 하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더 이상 혼자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왜냐하면 네가 곁에 있을 테니까) 너도 더 이상 혼자 길거리를 누비고 다닐 필요도 없지(왜냐하면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

근사하지 않아, 블래키?

Copyright ⓒ 2001 徐眞筆譚

오소영 1집 “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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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영혼이 읊조리는 상실의 코드>> 오소영 1 집 “기억상실” 리뷰

Intro
” 날 괴롭히는 상실된 꿈 . 날 괴롭히는 부적절한 기대. 날 괴롭히는 허무한 집착. 날 괴롭히는 끔찍한 책임”- 오소영, “부작용” 중에서.

근래에 이만큼 내면적으로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는 가사를 들어볼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 지지 못했다. 온갖 댄스음악과 샘플링을 통한 음악은 귀를 막아도 어디에서나 우리를 괴롭 혔고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외부로 날개짓 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20대와 30대를 관통하며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멜로디다운 멜로디를 들을 기회는 대 한민국에 없는 것일까. 우리는 신인 오소영의 첫 앨범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오소영 은 유재하 가요제에서 입상을 하고 한국 포크음악의 산실인 하나음악-조동익, 장필순, 한동 준, 낯선사람들-에서 음반을 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일정치 이상의 신뢰와 기대를 갖게 했 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음악은 탄탄한 음악 멤버들의 힘을 입고 특유의 개성을 맘껏 발 휘해서 근래에 보기 힘든 완성도 높은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About her Music
러닝타임 53분, 14곡의 꽉 찬 구성을 갖는 앨범에는 크게 세 가지 타입의 음악들이 수록돼 있다. 첫째 ‘덜 박힌 못’, ‘겁쟁이’, ‘잊고 싶어’,’부질없어’ 등의 모던 락 계열의 음악. 두 번 째 ‘비밀’,’기억상실’,’부작용’,’떠돌이’,’바람’,’눈을 감았지’등의 포크 음악. 마지막으로 ‘왜일 까’,’준비’,’실수’,’그건 싫어’ 등으로 이어지는 어쿠스틱-팝 계열의 음악 등이 곳곳에 포진되 어 있다. 특히 포크계열의 음악에서는 70년대 이후에 듣기 힘들었던 정통 포크음악의 진수 를 보다 모던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들려줌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정서적인 회귀본능을 자 극하고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선다. 또한 모던 락 계열의 곡들은 90년대 중 후반에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한국 언더그라운드 모던락 밴드 – 델리스파이 스, 미선이, 언니네 이발관- 들의 분위기를 계승 하지만 보다 절제되고 세련된 편곡으로 인 해서 그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낳게 만든다. (‘덜 박힌 못’과 ‘잊고싶어’의 인더스트리얼 적 편곡은 이 앨범의 백미다) 그리고 어쿠스틱 팝 계열의 노래들은 여행스케치와 낯선사람들의 분위기를 잠깐 엿볼 수 있고 복고이고 재즈스타일의 편곡(‘실수’, ‘그것 싫어’)이 돋보인다.

Voice Color
오소영의 음악은 어떤 악기보다 목소리 자체에 전달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확실히 그녀 의 보이스 칼라는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약간은 허스키 하지만 맑고 가식 없는 음색은 그녀의 포크음악과 같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우리에 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그러나 근래에 들어보지 못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Sing a Song Writier
오소영 앨범의 가장 큰 가능성은 전곡을 작사 작곡하고 어쿠스틱 기타까지 소화해낸 근래에 보기 힘든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이라는 점이다. 아마 그녀가 늘 비교되어야 할 대상은 장필순, 한영애 보다는 이상은 쪽이 아닌가 싶다. 보이스 칼러도 공통점이 있고(하지만 이상 은의 목소리에는 훨씬 비음이 많이 섞여 있고 표현영역이 한정되어 있다), 비슷한 세대에서 자신의 노래를 자신이 만들고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음악적 스타일은 비슷한 듯 하면서 현저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상은은 내면지향적이고 동양 철학적인 가사와 범 아시아적 음악을 만드는 반면 오소영은 내면 지향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 극히 한국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비슷한 스타일의 외국 가수로는 에이미 만과 사라 맥 크라클랜, 다이도 정도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위치 는 그에 비교해서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오소영의 등장은 반갑고 또한 소 중하다. 뛰어난 목소리로 남이 주는 곡을 재해석하는 가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이 말하 고자 하는 점을 자신의 가사로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가수의 존재는 온갖 ‘가짜’가 난무 하는 세상에서, ‘노래하는 감정’마저 가식인 세상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Lyric
그녀의 가사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코드를 따른다. 내면적 혹은 외면적인 이유로 혼란 과 방황이 계속되고(‘내겐 더 이상 상처받을 마음조차 남지 않았어’ ‘구제불능의 상태로 나 빠지고 있는 걸까’ ‘헤매야했던 긴 방황의 끝은 어디 있을까’ ‘내가 누구냐고? 나도 몰라’) 이는 세상을 떠도는 방랑이나 이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길을 떠나가네 멀리 아무도 날 찾지 못할 곳으로”이젠 씻어버리고 떠나는 거야’ ‘차라리 모두 버리고 멀리 떠나가고 싶어’) 방랑은 세상에서부터 소외를 낳게 되고(‘모든 걸 다 보여줄 수는 없지’ ‘나는 소외 되었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난 이렇게 지치고 외로운데’) 방랑자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 이나 혹은 ‘무언가’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당연해 이곳에 오기 두려운 건’ ‘똑같은 실수 투성이의 삶을 살겠지’ ‘어딘거야 도대체 여긴’ ‘그렇게 날 지워버려’ ‘모두 끝나버렸어 그 래 이젠 모두 늦었어). 하지만 이 모든 상실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있다 (‘아는 사람 없 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이제 나를 위한 바람이 불어’ ‘이런 지친 기분으론 안돼 힘을 내’ ‘널 생각만 해도 좋은 건 왜일까’) 이런 진행은 노래 곳곳에 나타나는 하나의 패 턴이고 앨범 전체를 요약하면 위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다분히 어둡고 개인적이며 폐쇄 적이기까지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영혼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가슴 깊 이 공감과 자연스런 감동의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Ending
아무리 좋은 음악도 알려지지 않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소영의 음악을 듣고 넌지시 걱정이 되는 것은 아마 나 혼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너무나 상업적인 현재의 우리 나라 음반 시장에 그녀만큼 개성적이고 내면적인 음악이 설자리가 없다면 비단 음악계뿐만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직무 유기가 아닐까 싶다. 소외된 영혼이 읊조리는 상실의 코드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을 타고 2001년 봄을 따뜻하게 반겨주고 있 다. 참 따뜻한 봄이다.

2001/3/23 튜브뮤직